[한심남녀 공방전]-15.최악의 시나리오

[한심남녀 공방전]-15.최악의 시나리오

기뿐비 0 963 2003.12.03 00:14
기사식당의 유혈참극 이후로 선도맨은 나의 면담신청을 전면거부했다.
몇일동안 퇴근하자마자 아파트 정문앞으로 달려가 귀가하는 선도맨을 기다렸으나 대구빡의
오보에 대한 정정보도 기회는 번번히 무산되었다.
곧고 올바른 성품을 대변해주던 정갈한 2:8 가리마가 조류의 안식처로 처참히 붕괴된 초췌
한 모습으로 귀가하던 선도맨은 아파트 정문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자
들고있던 복학생 모드의 서류가방에서 택시시사 모드의 썬글라스를 꺼내 착용하여 다시는 나
를 보고싶지 않다라는 본인의 발언에 책임을 지는 올바른 자세를 보여주며 100미터를 30초
에 주파하는 나의 속도로는 도저히 따라잡을수 없는 100미터를 29초에 주파하는 경이적인
속도로 바람을 가르며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선도맨이 떠난 자리에는 어디선가 들어본적이 있는듯한 공허한 메아리만이 울려퍼졌다.
'따라올테면 따라와봐'
선도맨에게도 도핑테스트를 실시해야만 하는것인가.
내 인생의 마지막 정거장을 주력이 딸려 이대로 떠나보낼수는 없었다.
다음날 나는 내가 점빵의 물건을 빼돌려 뽕값을 댄다는 심증을 굳히고 감시의 눈길을 번뜩
이는 존나1이 잠시 화장실에 간 틈을 타 바카스 한병을 횡령하여 복용하고 공기의 저항을
최소화 하기위해 츄리닝 밑단을 양말속에 끼워넣은후 기록향상에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하
는 쓰레빠를 스카치테이프로 발에 밀착 고정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춘채 아파트정문앞에서
배수의 진을 쳤다.
조류의 안식처를 머리에 이고 귀가하던 신도맨이 나를 발견하고는 복학생 모드 서류가방을
뒤져 주섬주섬 썬글라스를 착용하고 레이스를 펼치기 시작했다.
오늘은 기필코 선도맨에게 나의 결백을 증명하리라..
나는 필살의 각오로 선도맨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선도맨은 나의 향상된 주력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110동 메인건물에 진입한 선도맨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못하고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몇계단 위에서 달리고 있는 선도맨의 정갈한 엉덩이가 손만 뻗으면 잡힐 듯 했지만 무심한
선도맨의 엉덩이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초반의 오버페이스가 화근이었다.
숨이 끊어질듯한 고통에 그만 레이스를 포기하려는 순간 선도맨이 다급하게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시야에 포착되었다.
나는 사력을 다해 마지막 스퍼트를 올려 선도맨이 문을 닫기 직적에 집안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한번만 내말 쫌 들어도'
그러나 선도맨은 전방을 주시한채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선도맨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돌렸다.
침대위에는 선도맨이 법의 테두리 안으로 이끌었던 조직맨과 버스정류장에 위치한 애주가들
의 쉼터 '불나방 주점'의 왕가슴마담이 생명잉태 작업에 적합한 작업복 차림으로 누워있었다.
조직맨이 벌떡 일어났다.
'니 뭐라?'
지적호기심으로 불타는 조직맨의 질문에 의해 해동된 선도맨이 문밖으로 나가 홋수를 확인
하고는 다시 들어왔다.
'저는 옆집에 기거하는 사람입니다.'
조직맨이 파바박 왕가슴마담을 야렸다.
'내 학교 드간새 니 옆집놈이랑 바람핀나?'
'저래 힘엄써 보이는 놈하고 뭔 바람을 피?'
'근데 절마가 와 기들어오노?'
왕가슴마담이 선도맨의 옆에 뻘쭘하게 서있는 나를 발견했다.
'니는 뭐라?'
'옆집에 기거하는 사람 따라 들어온 사람인데요'
왕가슴마담이 파바박 조직맨을 야렸다.
'내 쎄빠지게 술따르는 동안 니 저 가스나랑 바람핀나?'
'저래 빈대가슴하고 뭔 바람을 피?'
'근데 저 가스나는 와 기들어오노?'
선도맨이 자신으로 인해 야기된 분란에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실수로 선생님의 구역을 침범하고 말았군요'
조직맨이 파바박 달려와 선도맨의 멱살을 잡았다.
'넘의 사랑을 방해해놓고 죄송하다 카마 다가?'
나는 사태의 조속한 마무리를 위해 선도맨을 측면지원했다.
'미안해예. 하던일 계속 하이소'
왕가슴마담이 파바박 달려와 내 머리끄디를 잡았다.
'맥을 다 끊어놓고 계속 하라카마 다가?'
내 피같은 단백질이 한웅큼이나 왕창 뽑혀 나갔다.
이대로 가다가는 여자의 몸으로 부친의 헤어스타일을 계승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르겠구나.
정정보도는 후일을 기약하고 일단 이 난관을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나는 왕가슴마담의 뒤쪽을 응시했다.
'오옷...김사장님'
왕가슴마담이 본능적으로 머리를 매만지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서오세.....'
나는 그대로 집으로 날랐다.
집안으로 뛰어들어간 나는 다급하게 현관문을 걸어잠그고 숨을 골랐다.
거실에는 부친이 소파에 앉아 티비를 시청하고 계실뿐 모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예?'
'지리산 약명도사한테 날짜 잡으러 갔다'
'그......그래예?'
모친이 사태의 전말을 파악하는 그날로 나는 뒷동산에 이름모를 무덤의 주인이 되어 있을터...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는 나에게 부친이 친히 금일봉을 하사하며 우직하게 공로를 치하했다.
'장하다'
나는 차마 부친의 면전에서 금액을 확인하는 야마리 없는 작태를 연출할 수는 없어 살짝 뒤
돌아 봉투안을 확인해보았다.
봉투안에는 만원권 지폐가 다소곳이 들어있었다.
부친이여. 그냥 주면 될 것을 굳이 봉투에 넣을것까지 있었나요...
모친에 이어 우직한 부친마저 전례없던 격려를 아끼지 않는 이마당에 어떻게 해서든 난황에
빠진 선도맨과의 관계를 다시 정상화 시켜야만 한다..
나는 내방으로 들어와 선도맨의 닫힌 마음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찾기위해 대구리를 싸잡고
방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방바닥이 은은한 광채를 발산할 무렵 나는 비젼없는 단독고민을 중단하고 장모양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무선전화기를 가지러 거실로 나갔다.
거실에는 부친이 티비를 켜 놓은채 소파에 앉아 우직하게 졸고 계셨다.
순간 전광석화와 같은 영감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남자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같은 남자의 조언이 보다 효과적이리라.
나는 부친을 깨우기 위해 티비를 껐다.
예상대로 부친이 퍼뜩 눈을 떴다.
'보는데 와 끄노?'
'아부지. 여쭤볼게 있는데예....'
'뭐고?'
'여자의 과거는 유죄라예?'
부친이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피워물고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얘기하고 싶지 않다'
'와예?'
'너거 엄마의 과거가.........아직도 내를 괴롭힌다'
'엄마한테 숨겨진 과거가 있다꼬예?'
오오.....이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빅뉴스였다.
당시의 아픈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듯 부친이 고뇌에 찬 눈길로 허공을 응시했다.
'곡마단이 우리 마을에 찾아왔을때였다'
'근데예?'
나는 학창시절 수업시간에는 단 한번도 선보인적 없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부친의 충격고
백을 재촉했다.
'너거 엄마는 그때 곡예사 리키박에게 그만........'
부친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한점 부끄럼 없이 뚫린 콧구멍으로 담배연기만
내뿜었다.
'아부지. 아무리 괴로버도 진실은 밝히야만 되예'
부친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리키박에게 그만.........찐고구마를 갖다주따'
부친은 우직하게 주먹으로 벽을 쎄리 쳤다.
부친에게 더 이상의 어드바이스를 구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이제 조언을 구할 남자는 남동생뿐이었다.
모친은 처녀작인 나의 실패를 거울삼아 후속작인 남동생은 수려한 외모와 명석한 두뇌를 겸
비한 수작으로 출산하여 깊은 편애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며 성장기를 보낸 남동생은
평소에 나보기를 똥같이 했다.
남동생에게 조언을 구하는 방안이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으나 다른 대안이 없는터라 어쩔수
없었다.
나는 벽을 마주보고 앉아 쓴 소주를 마시고 있는 부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위해 무선전
화기를 들고 살금살금 내방으로 퇴각했다.
'동생아. 내다'
'돈 엄따'
나는 예의상 우선 남동생의 안부를 물었다.
'요새 똥칼라는 좀 어떠노?'
'일곱빛깔 무지개다'
'부럽다'
'행복이란게 이런거지 싶다'
분명 한가지에서 나온 남매이건만 남동생과 나의 운명은 어찌 이다지도 다르단 말인가..
'뭐 쫌 물어볼기 있다'
나는 이런종류의 상담에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서론을 깔았다.
'이거는 내 친구 얘긴데...'
'니랑 놀아주는 아도 인나?'
'내를 너무 알로 보는거 아이가?'
'부정하지는 않는다'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이세상에서 그 솔직함만은 높이살만 하구나.
'친구가 남자한테 과거를 들키뿐는데....'
'솔직하이 상담에 임해라'
역시 남동생은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내가 남자한테 과거를 들키뿐는데.....'
'니도 과거가 인나?'
'와 욕으로 들리노?'
'눈치빠리네'
'우째야 되겐노?'
'무조건 들이대라'
'그라다 역효과 나는거 아이가?'
'니 처지에 배부른 고민이다'
역시 명석한 두뇌로 핵심을 짚어 주는구나.
'누나라꼬 한번만 불러주마 안되겐나?'
'무리한 요구다'
'니똥 무지개다'
과히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으나 많은 소득을 얻은 유익한 상담이었다.
역시 나에게 더 이상 물러설곳은 없었다.
다음날 나는 무조건 들이대기의 일환으로 선도맨의 집에 직접 방문하기 위해 퇴근을 서둘렀다.
그러나 선도맨의 집을 처음으로 방문하며 빈손으로 갈수는 없었다.
나는 늙은제비에게 초코파이 한상자를 가불로 신청하여 특별히 고른 오늘날짜의 신문으로
정성스럽게 포장한뒤 옆구리에 소중하게 끼고 선도맨의 집으로 향했다.
내 정성이 담긴 초코파이를 받는다면 선도맨도 마음을 열지 않을수 없으리라.
떨리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렸으나 선도맨의 집안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집안에 아무도 없는것인가...
나는 문앞에서 선도맨을 기다려야 할지 대기장소를 아파트 정문으로 옮겨야할지 향후 거취문
제를 고민하며 좀더 명확한 사태파악을 위해 문손잡이를 돌려보았다.
의외로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나는 변배출 사후미처리 자세로 조심스럽게 집안으로 들어갔다.
'선도맨 인나?'
집안에 선도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살색으로 점철된 비디오 화면에 대구리를 쳐박고 무
아지경에 빠져있던 대구빡이 현관에 서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후다닥 비디오를 끄고 침대로
점프하여 침대옆 옷걸이에 걸린 콘텍트렌즈 세척용 식염수병에 연결된 누런 기저귀 고무줄끝
을 스카치테이프로 팔에 붙였다.
대구빡은 빵꾸난 대구리에 반창고를 붙이고 물집이 터진 자리마다 추억의 의약품 아까징끼
를 쳐발라 임산부 맞대면시 유산율 98%에 육박하는 괴기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보든거 마저봐라'
'무리하마 안된다'
침대옆 사이드테이블 위에는 임산부 빈혈약 훼럼이 놓여 있었다.
'수태핸나?'
'니땜에 피가 모질랜다'
'내는 니땜에 인생 피박썼다'
'인생을 도박으로 살지마라'
대구빡아. 니가 현재스코어 타인의 삶에 어드바이스를 해줄 입장이냐.
'선도맨 안즉 안완나?'
''오늘 안온다 와?'
이놈이 기필코 선도맨과 나의 아름다운 사랑을 가로막을 심산인가...
'이기 어데서 사기치노?'
'야가 진실을 외면하네'
'선도맨이 외박할 사람이가?'
'응'
분명히 대답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허탈한 느낌은 무엇인가.
'선도맨 올때까지 기다릴끼다'
나는 초코파이를 옆구리에 끼고 앉을곳을 찾아 구만리를 떠돌았다.
그러나 내 지친 엉덩이 두짝 의지할 작은공간도 없이 어찌 이리도 알뜰하게 어질렀단 말인가.
장판색깔을 섣불리 예단할수 없이 고르게 어질러진 바닥은 진취적인 성교육을 위한 학습용
비디오테이프부터 건전한 여가선용을 위한 레져용 파리채를 거쳐 용도를 짐작할수 없는 짱
돌까지 드넓은 프리즘을 자랑하며 대구빡의 분열된 정신세계를 대변하는 진열장이었다.
'빈틈이라꼬는 용납을 몬핸네'
'내가 쫌 완벽주의자다'
'여기가 니집이가?'
'내집같이 편안하이 살고 있다'
'선도맨 오기전에 퍼떡 치아라'
'깝깝하마 니가 치아라'
대구빡이 매트리스로 스며들며 침대와 혼연일체가 되었다.
내가 왜 저놈이 어지른 것을 치워야 하는가.
그러나 고된 선도의 일과를 마치고 안식을 찾아 귀가하는 선도맨을 돼지콜레라 창궐이후의
돼지우리와 같은 이런 쑥대밭에 맞아들일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초코파이를 내려놓고 계절의 변화에 따른 패션의 흐름에 발맞추어 새로 꺼내입은 여고
시절 추.동계 체육복 소매를 걷어올렸다.
'그거 뭐고?'
'초코파.......'
나는 실수를 깨닫고 재빨리 손으로 입을 막았으나 이미 늦은후였다.
대구빡의 눈망울이 영롱하게 반짝였다.
'초코파이 쫌 노나 묵자'
'훼럼이나 쳐무라'
'훼럼은 무도 배 안부리다'
'니는 배부릴라꼬 약묵나?'
'그기 내 라이프 스타일이다'
나는 대구빡의 뜨거운 눈길에 초코파이가 녹아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츄리닝 허리고무
줄에 초코파이를 끼운후 그 위로 체육복을 덮고 임산부 포즈로 환경미화에 착수했다.
'아 아부지가 누고?'
'오리온이다'
나는 우선 비디오테이프를 치우기 위해 집어들었다.
날로 심각해져만 가는 현대사회의 가정붕괴에 대한 문제를 에로학적 시각으로 재해석한 '오
여사의 가출'이었다.
'부상중에도 억수로 공사다망핸네'
'오여사가 와 가출핸는지 지적호기심을 억누를수가 엄썼다'
'와 가출핸는데?'
'남편이 고자다'
'너무 전형적이네'
'실험정신이 부족하대'
대구빡과 나는 한국에로영화의 현실과 나아갈야 할 방향에 대해 진지한 의견을 나누었다.
열악한 제작여건과 사회의 편견어린 시선속에서도 관련종사자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으
로 중장년층 남성을 중심으로 고유한 시장을 확보하고 있는 그 꾸준한 생명력을 높이 평가
하는 나의 견해에 대구빡은 깊은 공감을 표하며 홍수처럼 몰려오는 외국에로물에 밀려 점점
그 설자리를 잃어가는 한국에로물을 우리손으로 지켜내기 위해서는 에로쿼터제의 실시가 시
급함을 역설하였다.
나는 심한 부상중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로영화의 중흥을 위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연구
매진하는 대구빡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며 비디오테이프를 정리하고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파리의 잔해가 들러붙어 있는 파리채를 향해 팔을 뻗었다.
순간 왼쪽 후두부를 스치는 이 오소독스한 필링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왼쪽으로 파바박 고개를 돌렸다.
나의 본능은 정확했다.
내 시선의 정중앙에는 라면찌꺼기가 눌러붙은채 널부러져 있는 스뎅냄비가 포착되었다.
'라면 인나?'
'절때로 엄따'
그러나 나는 대구빡의 아까징끼 페이스에 언뜻 스치는 위기감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싱크대로 돌진했다.
대구빡이 다급히 뒤쫒아와 저지했으나 나는 필살의 탐색전을 펼쳐 안성탕면 두 개를 찾아내었다.
대구빡이 호시탐탐 안성탕면 탈환의 기회를 노렸으나 나는 안성탕면을 가슴에 꼭 품고 결사
항전의 의지를 불태웠다.
황산벌을 사수하기 위해 오천결사대와 장렬히 산화한 계백의 심정 또한 나와 같았으리라.
'안성탕면 가갈라 카마 내 시체를 밟고 가라'
'니 목숨 억시로 저렴하네'
'중저가 인생이다'
'니 다쳐무라'
저놈이 왠일로 이리 쉽게 물러난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놈이 퇴각중에 슬쩍 젓가락 두짝을 집어 허리춤에 낑구는 것을 놓치지 않고 포
착했다.
대구빡이여. 공허한 젓가락에 실린 헛된 야망을 버려라.
나는 안성탕면 두 개를 금지옥엽 끓여 바닥에 굴러 다니는 책을 집어 냄비를 받치고 식탁위
에 놓았다.
예상대로 대구빡이 허리춤에서 젓가락을 꺼내며 파바박 다가왔다.
나는 아직도 펄펄 끓고있는 안성탕면 면발을 단 한번의 지체없이 결사적으로 빨아땡겼다.
면발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때마다 모가지에 타는듯한 고통을 느꼈으나 대구빡에게 금쪽같
은 면발 한올이라도 뺏길수는 없었다.
대구빡이 냄비속에 젓가락을 휘둘렀을때는 이미 한올의 면발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구빡이 젓가락을 집어던지고 국물을 노리며 냄비 손잡이를 잡았다.
나는 온몸이 뒤틀리는 고통속에서도 재빨리 놈을 제지했다.
대구빡과 나는 동시에 냄비 손잡이를 잡은채 서로를 노려보며 긴박한 대치국면에 접어들었다.
'양심이 있음 냄비 놔라'
'닭 두 마리 지혼자 쳐문놈이 양심을 논하나?'
대구빡이 얼핏 내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히야.......'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곧 속은 것을 깨달았으나 이미 늦은후였다.
대구빡이 냄비를 들고 한아가리에 국물을 들이부었다.
갑자기 대구빡이 부들부들 떨며 냄비를 툭 떨어뜨렸다.
그리고 모가지를 감싸쥐고 바닥위를 굴렀다.
누군가 돈을 목적으로 농심을 협박하기 위해 불특정 다수를 노리고 안성탕면에 독극물을 투
입한 것인가.
그렇다면 나도 위험하지 않은가.
삼복더위 땡볕에 잘못 기어나온 지렁이처럼 온몸을 디디 틀며 바닥을 기어 침대옆 테이블에
도착한 대구빡이 구급상자에서 아까징끼를 꺼내 모가지에 쳐발랐다.
'닝기리. 뜨거브마 뜨겁다꼬 말을 해주야 될거 아이가?'
'저기 조류가?'
외견상 드러나는 특징으로 유추해 보건데 저놈은 필시 인간과 대머리독수리의 혼혈이리라.
나는 선도맨이 귀가하기전에 설거지를 마치기 위해 냄비를 개수대로 옮겼다.
순간 냄비 밑에 받쳐두었던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풍운도사의 백팔번뇌' 제 2권이었다.
'이기 니가 쓴기가?'
'저주받은 걸작이다'
'저주받은거는 확실해 빈다'
'니가 문학의 세계를 아나?'
나는 문학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대구빡의 저주받은 걸작을 펼쳐들었다.
나는 끝내 문학의 세계를 이해하는데는 실패했지만 '풍운도사의 백팔번뇌'가 왜 저주받았는
지는 십분 이해했다.
1페이지부터 50페이지까지는 풍운도사가 멀쩡한 대나무 짜개고 죄없는 짱돌 깨고 지혼자 생
쑈를 하더니 50페이지부터 100페이지까지는 갑자기 폭포에서 훌떡벗은 여자가 튀어나와 머
리감고 때밀고 지혼자 생쑈를 다했다.
대구빡의 저주받은 걸작은 불면치료 연구에 일대 혁명으로 기록될 탁월한 효능의 신약이었다.
나는 또렷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끝내 내리덮이는 눈까풀을 막지 못했다.
식탁에 엎드려 잠깐 졸았던 것인가....
어렴풋한 의식 저 너머에서 점점 또렷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잠을 깨운 소리의 정체는 치킨집 과부가 입양한 수탉의 처절한 울음소리였다.
미국에서 입양한 닭이라서 시차적응이 안되는 것인가..
침을 닦으며 고개를 든 순간 베란다 창을 통해 보이는 하늘에는 이미 뿌옇게 동이 터오고
있었다.
식탁위에 꾸개진 채로 밤새 꼬박 잠들었었단 말인가.
나는벌떡 일어나 다급하게 집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선도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대구빡만이 침대에 널부러져 도회적인 보
사노바 리듬으로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나는 후다닥 대구빡을 흔들어 깨웠다.
대구빡이 힘겹게 한쪽 눈만 떴다.
나는 손꾸락으로 대구빡의 나머지 한쪽 눈까풀을 들어 올렸다.
'선도맨 안즉 안완는갑다'
'알고 있다'
'니는 걱정도 안되나?'
'안된다'
'이래가 머리 꺼먼 짐승은 거두는기 아이다'
'내 머리 살색이다'
나는 침대옆 테이블에 놓인 무선전화기를 집어들었다.
'경찰서 몇번이고?'
'내 안성탕면 훔치문거 자수할라꼬?'
'선도맨 실종신고 할라꼬'
대구빡이 파바박 팔을 뻗어 전화기를 뺏었다.
'히야 어제 숙직했다'
''십탱. 그걸 와 인자 말하노?'
'어제 안온다 캤었잖아'
'그라마 와 기달리구로 냅뒀는데?'
'니가 가뿌마............'
대구빡의 아까징끼 페이스에 슬픔이 깃든 애절함이 스쳤다.
이놈이 역시 나에게 연모의 감정을 품어왔던 것인가..
그래서 선도맨과 나의 교제를 그리도 온몸을 바쳐 가열차게 방해했던 것인가..
'내....내 가뿌마 뭐?'
'대구빡이 촉촉한 눈망울로 내 불룩한 배를 응시했다.
'초코파이도 가잖아'
'이기 과연 인간이가?'
나는 침대위로 점프하여 대구빡에게 분노의 핵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대구빡이 몸을 한바퀴 돌려 나의 주먹을 피하자 나는 허공을 가르는 주먹의 반동을
제어하지 못하고 대구빡의 몸위로 자빠링했다.
배에 품고있던 초코파이 상자가 빠지직 짜부라졌다.
'선도맨한테 바칠라꼬 아끼왔던긴데....책임지라'
'니가 먼저 흥분해가 덮치짢아'
순간 무엇인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실내에 울려퍼졌다.
대구빡과 나는 침대위에서 혼연일체가 된 자세로 소리의 진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복학생 모드이 서류가방 옆에는...........
선도맨이 얼어붙은채 서 있었다.............



.......................................................................................

제가 올릴수 있는 글 마지막이예요

글쓴이가 몇주후에 다시 올린다거 했는대...

다시 구하게 되면 또 올릴께요 ^^


211.44.178.154공작가 (deartt@empal.com) 12/03[00:38]
고생 많으셨고 넘 재밌게 읽었어요... 아... 몇주씩이나.... 빨리 구해주세요.... ^^*
211.44.176.28KENWOOD 12/03[08:58]
빨리 집필해서 올려,,,슝슝~~~
211.199.39.76고다르 12/03[09:32]
초코파이~~~~
211.200.226.227기뿐비 12/03[11:50]
몬 집필?? 내가 쓴거 아니라니깐 예로카드 캔 ㅡ.ㅡ++
211.200.226.227기뿐비 12/03[11:50]
예로카드 <<== 옐로카드 ㅡ.ㅡ
211.44.176.28KENWOOD 12/03[12:37]
헉,,,에로카드라고,,,흐미,,,에로,,,
211.208.180.112무척 12/03[13:09]
잘 읽고 있습니다. 특히 단어의 언어표현력은 가히 예술입니다. 극찬을 표합니다.
211.59.254.172사과장수 12/03[13:41]
누나가 다 쓴글이면 한 번 읽어 볼랬더니...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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