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남녀 공방전]-03.고기동우회에 가입하다.

[한심남녀 공방전]-03.고기동우회에 가입하다.

기쁜비 0 1,085 2003.11.18 00:07
햇빛도 안드는 구석방 한 귀퉁이.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괴이한 소리.
'탁' 한참있다 '탁' 푹 쉬고 '탁'
그것은 내가 컴퓨러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컴퓨러와는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왔던 내가 힘겹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그 계기는 바로 남동생이 얼마전에 채팅으로 만난 여인과 백년가약을 맺은 사건이었다.
나는 그토록 유익한 세계를 왜 진작 알지 못했던가 뼈저린 회한을 느끼며 바로 컴퓨러를 배웠다.
물론 채팅하는 방법만 속성코스로 집중 마스터했다.
그리고 부푼 가슴을 안고(부풀어봤자 A컵이다) 채팅의 현장에 투신했다.
그러나 문제는 타자수였다.
한타와 한타 사이에 여백의 미를 중요시하는 나의 타자 스타일로는 그 살벌한 현장에서
살아남을수가 없었다.

case 1.
떼거지-퀑팡쾅탕슝랑탱팽롱쌍깡.....
메리-안....
떼거지-쿨칠롤폴켈랄살팔탈칼헐.....
메리-녕....
떼거지-팔싹꿱칵탁슉룩꼭툭팩땍.....
메리-헐~
그래서 난 맨이 혼자 들어앉아 있는 방을 찾아 들어갔다.

case 2.
채팅남-반가워요.
메리-네.
채팅남-어디사세요?
메리-집.
채팅남-하하....집이 어디신데요?
메리-대구.
채팅남-이런...너무 과묵하시군요..그럼 이만 즐팅...
메리-헉~
나는 최선을 다해 말을 길게 하기로 했다.

case 3.
채팅남2-하이.
메리-아ㄴ여햐새오? (땀한방울 찍)
채팅남2-후후...독수리군.
메리-미야ㄴ해오ㅛ. (닭똥같은 땀이 질질)
채팅남2-짜증난다. 타자연습 더 하고 와라.
메리-흑~

정녕 이곳마저도 내 늙고 지친 몸하나 기댈곳은 없단 말인가.
방에서 쫒겨난 나는 바람따라 구름따라 정처없는 방랑의 길을 떠났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고독한 방랑길에 지쳐 쓰러지려는 순간...
나는 진정한 파라다이스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그 파라다이스의 간판은 '고.찾.사'
고기를 찾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왜 여태 이런 천상의 세계를 몰랐단 말인가.
나는 당장 가입 신청을 했다.
그후 소정의 절차를 거쳐 당당한 회원이 된 나는 고찾사의 풍요로운 세계를 마음껏 헤엄쳐
다녔다.
그런데......
오옷~ 신은 나의 편이던가.
바로 오늘저녁이 정모였다.
에헤라디여~ 이제야 찾아온 봄날이로세.
그러나 잠시후.......
쪼그락~ (찌그러지는 효과음)
회비가 2만원이었다.
이 가공할 거금을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전재산을 그러모아 보았지만 버스비만 겨우 될 정도였다.
나는 대구리를 싸잡고 고통스럽게 방바닥을 뒹굴렀다.
두시간을 뒹굴고 나자 답은 안나오고 기력이 소진되었다.
그러나 뒹굴다 달팽이관이 터져 죽는한이 있더라도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또 다시 대구리싸잡고뒹굴기 후반전을 치루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보충이 절실했다.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안을 뒤져보았다.
냉장고 안은 온갖 이름모를 풀들이 난무하는 개발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이었다.
나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전투적으로 도마질을 하는 모친에게 물었다.
'엄마. 뭐 묵을거 없나?'
'내 잡아 무라'
저 여인도 과연 젊은시절에는 시집 책갈피에 꽃잎을 끼워 말리기도 하고
옆집 더벅머리 총각의 서툰 고백에 수줍게 얼굴을 붉히던 그런때가 있었을까.
나는 결식아동 포즈로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먹고 물배를 채운 후 다시 방으로 돌아와 양
손에 대구리를 딱 끼우고는 다시 뒹굴기 시작했다.
콩나물 심부름으로 2만원을 카바하려면 환갑전에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아무리 뒹굴러도 방법은 부친에게 선처를 구하는 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퇴근해서 집으로 오신 부친께 정중히 회담을 신청하고 베란다로 모셨다.
좀 더 좋은곳으로 모시지 못한 점 딸로서 죄송함을 금할수 없었으나 모친에게 발각되는 날에는
부친이나 나나 죽음을 면할수 없었기에 그것은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아부지. 제 인생에 꼭 필요해서 카는데 돈 쫌 주이소'
부친은 묵묵하게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주셨다.
부친은 우직한 캐릭터였다.
내가 협찬을 요구할때는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직하게 만원이었다.
'아부지. 방금 그 멋진동작 한번만 더 리플레이 해주이소'
부친은 우직하게 다시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주셨다.
두 번째 만원짜리를 받아드는 순간....
베란다와 거실사이의 문이 확 열렸다.
모친이었다.
'내가 버릇된다꼬 저거한테 돈 주지 말라캤재?'
부친은 우직하게 대답하셨다.
'응'
'한번만 더 주다 걸리마 내한테 죽는다'
'응'
부친이여. 너무 우직하신거 아닙니까.
모친의 도끼눈이 나를 찍었다.
'받은돈 내놔라'
나는 재빨리 주위의 지형지물을 파악했다.
출구는 모친에게 봉쇄된 상태였고 반대쪽 베란다창문은 떨어지면 빈대떡이었다.
절대절명의 위기였다.
모친이 앞으로 한발짝 내디뎠다.
나는 창문을 열고 난간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가까이 다가오지 마라! 더 이상 다가오마 뛰내릴기다!'
''돈 내놓고 뛰내리라'
저 여인이 과연 내 친모가 확실한가.
이 위기에서 살아남는다면 필히 내 출생의 비밀을 밝혀내리라.
모친이 한발짝 더 간격을 좁혀왔다.
그 결과 모친과 출구 사이의 빈틈이 내 눈에 들어왔다.
모친은 내눈을 바라보며 점점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베란다창으로 슬쩍 돌려 모친의 시선을 교란한후 모친이 방심한 틈을 타 동물
적인 감각으로 모친과 출구 사이의 빈틈을 파고 들었다.
그리고 현관으로 돌진해 손에 잡히는 대로 모친의 고무 쓰레빠를 집어들고 밖으로 냅다 튀었다.
허를 찔린 모친은 분노의 표호를 내지르며 나를 쫒아왔지만 고기를 향한 내 집념은 1초에
아파트단지를 일곱바퀴 반을 돌고도 남았다.
나는 가뿐하게 모친을 따돌렸다.
내가 이렇게 고기에 목말라 하는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모친은 지금으로부터 십몇년전 엄청 심한 식중독에 걸려서 죽다 살아났었다.
그 이후로 모친은 건강한 식생활을 인생의 모토로 삼게 되었다.
기본 사양으로 인스턴트 식품은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음식은 잘라버리는 부분없이 전체를 다 먹어야만 그 음식이 가진 모든 영양소를 온전히 섭
취할수 있다면서 참외를 껍질을 안깍고 그냥 멕인다.
그리고 끓이지 않은 생된장이 암과 성인병 예방에 직빵이라는 신문기사를 보고 나더니 끼니
마다 진짜 똥보다 더 똥같은 된장덩어리를 한주먹씩 올려놓고 물에 뿔린 다시마에 그 생된
장을 싸서 먹는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고기는 도살할 때 안죽을라고 버티다가 독을 품고 죽기 때문에 그렇게
죽은 고기를 먹으면 그 독이 다 내몸안에 쌓이는 거라는 세계 어떤 학계에도 알려진바 없는
해괴한 학설을 주장하며 주구장창 풀만 멕인다.
그러다 간혹 부친께서 몸이 허하다면서 문지방에 걸려 픽 쓰러지면 대통령 표창 내리듯이
달걀후라이를 해주는데 어디서 그런 달걀만 구해오는지 닭알이 메추리알만하다.
한젓갈 집어먹으면 바로 파장이다.
견디다 못한 부친과 우리남매는(동생이 장가가기 전일이다) 날을 받아 식사를 거부하며 총
파업을 결행했지만 모친은 '사흘만 굶어봐라. 개풀도 뜯어먹을 것이다' 라는 파쇼적인 대 식
구 담화를 발표하고는 식사공급을 전면 중단해 버렸다.
모친 몰래 밖에 나가서 다른걸 사먹을수 있는 부친과 동생은 일주일동안 끈질기게 투쟁했지
만 나는..........
하루만에 적에 투항하고 말았다.
결정적으로 나가서 사먹을 돈이 없었다.
모친은 그 이후로 더욱 사기충천하여 식탁을 더욱 다채로운 이름모를 풀들로 수놓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우리 식구들은 모두 깊고 은은한 풀빛이 돋보이는 똥을 싸는 기형적인 배변형태를
보인다.
부친과 남동생의 배변현황을 자세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필시 내똥의 칼라가 가장 깊이있
는 풀빛일 것이다.
금전적인 이유로 모친의 식단에 가장 충실할 수밖에 없었으니.
동생은 장가간후 분홍빛 색소 선명한 쏘세지만 사흘을 줄창 먹고 분홍빛 똥을 싼후 변기를
부여잡고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오늘의 정모는 나에게 결고 포기할수 없는 거사였다.
나는 흙묻은 발바닥을 대충 털고 모친의 고무 쓰레빠를 껴 신었다.
가게의 쇼윈도에 내 모습이 비쳤다.
헤어쪽은 감은지 이틀밖에 안지나 아주 양호한 상태였지만 후줄근한 국방색 민소매 티와 모
친의 계모임 야유회기념으로 제작 배포된 츄리닝이 맘에 걸렸다.
그러나 이제와서 되돌아 갈수는 없는일이었다.
나는 츄리닝 주머니에 소중히 챙겨둔 동전으로 버스를 타고 정모장소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높다랗게 걸린 간판에는 소와 돼지가 지 죽는줄도 모르고 화사하게 웃고
있었고 입구쪽으로 한발 다가서니 천상의 냄새가 온몸을 감싸고 돌아 쌩풀 냄새에만 길들여
진 내코가 벅찬 기쁨을 이기지 못해 감격의 액체를 분출했다.
코를 닦으며 안으로 들어서자 홀 안쪽에 위치한 방 앞에 '고찾사정모'라는 안내표시가 붙어
있었다.
방에는 이미 많은 회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나는 내 소개를 하고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회원들의 얼굴은 고품격 기름이 반지르 도는 것이 과다섭취한 엽록소가 얼굴까지 뻗쳐올라
푸르딩딩한 내 얼굴과는 그 질을 달리했다.
그들이 뿜어내는 럭셔리한 기름에 푸석한 내몸을 적시며 앉을 자리를 물색하는 순간.......
내 눈 한 구석으로 허여멀건 물체가 언뜩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불길한 예감을 억누르며 허여멀건 물체쪽으로 조심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고만고만한 키의 회원들 사이에서 장대하게 우뚝 솟아있는 허연 대구리 한 개.
빵꾸난 대구리에 대일밴드 한개 붙이고 앉은 대구빡의 찢어진 눈과 내눈이 마주쳤다.
저 180도 회전 대구빡이 여기 왜 있는 것인가......

대구빡과 나의 놀란 표정 한번씩 클로즈업해주고 괜히 짠짜잔 짠~ 음악 흘러주고 밑에 자막
"다음주에 계속"

211.44.178.154공작가 (deartt@empal.com) 11/18[00:18]
이게 뭐예요??... 저두 넘 길어서 뭐가 뭔지.... 주무시와요.... ㅠㅠ
211.108.215.95기쁜비 11/18[01:24]
잼난 글염 ㅋㅋㅋ
211.44.178.154공작가 (deartt@empal.com) 11/18[02:05]
차근차근 읽어보니 재밌네요....ㅋㄷㅋㄷ... 및에 씨리즈도 함봐야징....
211.44.178.154공작가 (deartt@empal.com) 11/18[02:06]
밑에.... 아... 오타..
61.254.17.210홀로서기 11/18[08:46]
아무래도 딱 누난데..... ㅡ,.ㅡ;; 요즘 글케 힘들어? ㅋㅋㅋ
211.224.14.236쥬신 11/18[09:10]
이번은 딱 니가 주인공아이가..요번 정모에 조심해야징
레인하고 떨어져 앉아야겠군....-,.-
211.200.226.227기쁜비 11/18[09:24]
ㅠ,ㅠ 나 아니야 ㅠ,ㅠ
211.204.230.15KENWOOD 11/18[09:53]
내가 보증하오,,,절대루절대루 기쁜비 아니오,,,
211.200.226.227레인 11/18[11:06]
캔 넘 몸사리는 것이 보이오~~~ ㅡ.ㅡ
211.224.193.242니와토리^ㅣ^* 11/18[13:37]
저번에 보니깐...레인언니 고기 마니 안먹둔데요~궁금쿠러 왜 저렇게 끝나요~~
211.229.80.8고인돌 11/18[16:20]
글 잘보고 잇습니다 잼나네요~~! 백수의 사랑이야기 버금갈정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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