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자를 따라 열나게 뛰기 시작했다.
모친의 고무 쓰레빠를 끌고 나온터라 나의 뛰는꼴은 가히 탈춤에 견줄만했다.
나는 탈춤을 추며 남자를 불렀다.
'저기요!'
남자는 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지 갈길로 걸어갔다.
그래 니가 나의 첫 호출을 묵살해 줌으로써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이 글에 지대한 도움을
주는구나.
봐라. 벌써 두줄 늘었다.
나는 더욱 신명나게 탈춤을 추며 더 크게 남자를 불렀다.
'잠깐만예!'
그제서야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허우적 거리며 남자의 앞에 다가섰다.
남자가 나의 자태를 훑어보았다.
나흘을 안감아서 천연오일이 고르게 도포된 윤기나는 머리와 무릎 부위가 알맞게 융기된 추
리닝, 그리고 곰 앞발 푹 짤라놓은거 같이 생긴 모친의 고무 쓰레빠까지.
아~ 살포시 수줍어지는구나.
남자가 똥찌그리한 표정으로 물었다.
'와요?'
마주대한 남자의 모습은 참으로 9시뉴스틱했다.
머리는 사찰 헤어스타일로 어두운 골목을 비추고 있었고 반면에 턱에는 언제 마지막으로 깍
았는지 추정할수 없는 수염이 덥수룩했다.
모가지위에서 대구빡을 180도 회전시켜 놓은 형상이었다.
거기다 나를 바라보는 남자의 두눈은 조금만 더 찢어졌더라면 얼굴이 두 동강날 판이었다.
너를 홀랑 벗겨놓으면 분명히 온몸에 차카게 살고 용가리 날고 하트에 화살 쳐박혀 있으리라.
내가 잠시 쫄아서 주춤하고 물러나자 남자가 한발짝 나서며 다시 물었다.
'와요?'
180도 회전 대구빡아.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너 때문에 세상이 다 덮인다.
대구빡의 덩어리는 엄청나게 컸다.
메이져리그에 주전자보이로 진출하면 ESPN에서 빅대구빡이라고 난리날판이다.
무서웠다.
그러나 완벽진공 무소유인 이몸.
여기서 죽는다 한들 잃을 것은 무엇이랴.
'장미 내한테 팔면 안되예?'
대구빡의 눈이 더 찢어졌다.
'와요?'
대구빡아 술쳐먹었는가.
왜 했던 대사 자꾸 반복하는 것인가.
'거기가 사간기 마지막이라서예'
'그라마 딴거 사마 되잖아요'
절대빈곤의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자의 저 천진한 멘트를 보라.
너의 그 찢어진 눈마저 천진해 보이는구나.
차마 쪽팔려서 돈이 모자라서 다른 담배를 살수 없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원래 장미밖에 안피아서예'
'내도 장미밖에 안피는데요'
설마 너도 나같은 절대빈곤 종족이더냐.
나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대구빡에게 내밀었다.
'돈 드리께요. 내한테 파이소'
'싫구마'
대구빡이 귀찮다는 듯이 획 돌아서 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 길고 긴 론리 나이트를 담배마저 없이 어이 보낸단 말인가.
나는 또 다시 탈춤을 추며 대구빡을 따라가 팔을 붙잡았다.
'한번만 팔아예'
'안판다는데 와 이카는데요'
대구빡이 내 손을 확 뿌리쳤다.
피같은 동전들이 장렬한 포물선을 그리며 길바닥에 산산히 흩어졌다.
저 돈이 어떻게 마련한 돈인데!
여기서 나의 피눈물나는 담배 자금조달 과정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1.모친이 콩나물 사오라고 천원을 틱 던져준다.
2.그걸 들고 마트로 간다.
3.여러가지 상표들의 콩나물 봉다리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코너로 향한다.
4.콩나물 봉다리들을 구미호가 간빼먹을라고 무덤 파듯이 파 뒤집는다.
5.880원짜리 가격표가 붙어있는 봉다리를 발견한다.
6.천원을 내고 120원을 거슬러 받아 츄리닝 주머니 깊숙히 넣는다.
7.집에 돌아오는길 내내 손톱이 뿌라져라 가격표를 열나게 파 후빈다.
그렇게 피눈물나게 마련한 돈이기에 10원짜리 한 개라도 분실할 수는 없었다.
나는 다급하게 동전들을 줍기 시작했다.
백원짜리는 그나마 수거가 용이했지만 짙은 색깔의 10원짜리 동전은 어두운 밤길에서 잘 보
이지가 않았다.
나는 길바닥에 찰싹 붙어 처절한 동전 수거작업을 벌였다.
그런데 대구빡은 한 여자의 전재산을 날려 놓고도 뻔뻔스럽게 멀뚱히 서있는 것이었다.
나는 붕 날라 대구빡의 허연 대구리를 양손으로 싸잡고 어두운 길바닥을 비추었다.
그러나 대구빡의 조명만으로 어둠을 사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종수거액수는 650원이었다.
어둠속에 장렬히 산화해간 650원을 다시 마련하려면 또다시 얼마나 손톱이 뿌라져야 한단
말인가.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나는 모친의 고무쓰레빠를 벗어들고 대구빡의 대구리를 사정없이 갈겼다.
고무라서 그런지 찰싹 감기는 손맛이 일품이었다.
이맛에 비디오의 변태들이 그렇게 땀을 질질 흘리면서 때리는 것인가.
나는 650원의 한을 담아 혼신의 힘을 다해 대구빡의 대구리를 갈기고 또 갈겼다.
다시 한번 쓰레빠를 휘두르려는 순간 대구빡이 내 손목을 확 낚아챘다.
'이기 미친나'
나를 꼴아보는 대구빡의 찢어진 눈위로 벌건 액체 한줄기가 찍 흘렀다.
대구빡이 손꾸락으로 용액을 찍어 맛을 봤다.
'이런 십탱구리. 내 피같은 피를!'
대구빡은 흐르는 피를 손구락으로 찍어 미친 듯이 쪽쪽 빨아먹었다.
고무로 때려도 피가 나는가.
나는 쓰레빠를 뒤집어 보았다.
움푹한 부분에 조그만 돌이 박혀 있었다.
이런 사소한 옵션만으로도 고무쓰레빠가 이토록 파괴력있는 무기가 될 수도 있구나 감탄하는
순간 대구리에 빵꾸 뽕 난채 흡혈귀의 작태를 보이던 대구빡이 갑자기 내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솥뚜껑만한 손을 확 치켜들어 나에게 날리려 했다.
그래 돈 많으면 패라.
이 원통한 세상 더 이상 미련도 없다.
너한테 받은 합의금으로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효도나 해보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1초....2초....3초....
소식이 없었다.
나는 감은 눈을 살포시 떴다.
대구빡이 치켜들고 있던 손을 다시 내리며 내 멱살을 확 던지듯이 놓았다.
'돈 아깝다'
눈치챘단 말인가.
보기보다 예리한 놈이었다.
'650원어치 담배로 내놔라'
'이기 담배 몬피아가 죽은 귀신 붙었나?'
'남에 재산을 축냈으마 합당한 보상을 해라'
'그라마 내 피 값 내놔라'
나는 대구빡의 코앞으로 팔을 내밀었다.
'내피 뽑아가라'
'이 무식한기 아무데나 다 집어너마 되는지 아나?'
'내 O형이다. 아무나 다 줄 수 있다'
'내 RH-형이다. 그거도 되나?'
'모른다. 안되나?'
'나도 모른다'
대구빡과 나는 야밤에 길거리 한복판에서 변태쑈를 벌인지 1분만에 같은 지점에서 진지한
의학토론을 벌였다.
'모르는거는 니 과실이다. 650원어치 담배로 내놔라'
대구빡이 질린 표정으로 담배갑에서 거칠게 담배를 뽑아내 길바닥에 패댕이쳤다.
나는 담배가 시야에서 벗어나 어둠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얼른 담배를 주웠다.
'이제 된나?'
재빨리 담배를 세어 보았다.
10가치였다.
'됐다'
'니 앞으로 머리에 꽃 꼽고 댕기라'
'와?'
'미친년인거 표시하고 댕기라 말이다'
대구빡은 분노의 타액을 찍 배출하며 나를 꼴아봤다.
나는 대구빡을 마주 꼴아봐주고 돌아서 힘겹게 쟁취한 10가치의 담배를 소중하게 품고 집으
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런데 잠시후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뒤로 획 돌아 보았다.
대구빡이었다.
나는 허우적 거리며 걸음을 빨리했다.
그런데도 대구빡은 계속 따라왔다.
우리아파트 단지까지 이르렀을때는 거의 나를 따라잡을 정도였다.
갑자기 공포가 밀려들었다.
저놈이 나에게 노리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내 수중에 있는 돈 650원을 원하는 것인가.
그러나 650원은 나에게나 크나큰 돈이지 범행을 도모하기에는 너무 빈약한 액수가 아닌가.
그렇다면 저놈이 노리는 것은 내 원숙한 30대의 육체란 말인가.
나는 획 돌아서 다리를 최대한 오므리고 가슴을 감싸안으며 대구빡을 노려보았다.
'원하는기 뭐고?'
대구빡이 45도 각도로 나를 깔아보며 말했다.
'참 버라이어티하게 지랄한다'
대구빡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먼저 쑥 들어가 버렸다.
저놈도 이 아파트에 사는것인가.
아~ 무안하여라.
여자라면 무조건 덤벼들거 같이 생긴 네놈 마저도 나를 취급도 안한는 것인가.
흙 묻은 담배 10가치를 가슴에 꼭 품고 걸음을 옮기는 내 등뒤로 휘잉~ 쓸쓸한 바람이
불어온다.
사과장수 11/17[04:30]
흐미~~ 이것은 더 길구만!!! 길이만 재어보는 사과장수 ㅡㅡ;;
레인 11/17[09:29]
미티 ㅡ.ㅡ
홀로서기 11/17[23:52]
이야 누나 같은 아파트에 살면 인연일지도 모르는데.... 함 잘해보지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