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눈·귀를 가리는 '검은 연기'
꼬얌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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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22 10:49
[언론신경쓰기 03-2] 매일신문이 대구참사를 보는 시각
(오마이뉴스에서 퍼옴)
김진국 기자
천년을 흘러도 변하지 않을 바둑의 정석처럼 참사의 수습은 정해진 수순대로 진행되어 왔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눈물을 머금은 채 부끄러운 손길을 내밀며 죽은 이들과 교감을 나누던 시간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제 마지막으로 희생자들의 제단 위에 바칠 제물을 선택하는 일만 남아있고, 대구 시민들은 비장한 낯빛의 시정 책임자가 "다시는 이런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맥빠진 약속을 하고, 250만 대구시민의 힘으로 이 역경을 딛고 일어서 세계 초일류 도시로 거듭 태어나자는 간곡한 당부의 말씀을 하게 될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로부터 며칠 뒤에 대구시에는 그 누구도 눈길 한번 주지 않을 현수막이 여기저기서 펄럭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안전한 지하철, 혼을 담은 시공으로 대구시민에게 보답하겠습니다"
이승의 세계에서 죽음의 공포와 지옥의 아수라가 바로 저런 것임을 우리는 그 지하 공간에서 생생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날의 참혹함과 충격, 그리고 온몸을 떨게 했던 공포와 애처로움은 시간이 가면서 촛불이 가물거리듯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흐릿해져가고 있다. 매캐하게 코를 찌르던 죽음의 냄새도 도심의 혼탁한 공기 속에 뒤섞여 묽어졌다.
죽은 이들에 대한 연민과 죄의식, 하지만 또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현실이 충돌하며 빚어내는 갈등은 늘 인간이 가진 망각의 기능이 깔끔하게 조정해왔다. 개나리가 노란 봄옷을 갈아입을 무렵이면 우리 발뒤꿈치까지 바짝 다가서 있던 '죽음'은 산 사람이 다가설 수 없는 저승의 세계로 밀려나고, 이승은 다시 활력과 생기가 흘러 넘칠 것이다.
그런데 기억이 엷어질수록 절망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유독 대구에서만 왜 자꾸 이런 사고가..."라는 억울함 때문이 아니다. 어디 대구뿐이랴? '수'의 문제일 뿐 매일 같이 죽고 죽이고 다치고, 또 그런 일들이 끝없이 반복되는 것이 지금 이 시대를 관통하는 한국사회의 생명문화 아닌가?
온 대구시민이 전심전력을 다하여 반대했던 사람이 보란 듯이 청와대에 떡하니 앉아 있고, 게다가 그 대통령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 알량한 처지가 한심스러워서도 아니다. 분명 가족들과 웃고 깔깔대며 살아있어야 할 사람들이 영정 속에 갇혀 있는 것조차 어이없는 일일진대 그 영정조차 얼굴을 뒤로 돌리고 있을 정도로 대구는 절망하고 있다.
전동차 속에서 한순간에 숯덩이로 변해버린 사람들, 그들이 남기고 간 육신의 흔적들이 사고가 나던 바로 그날 저녁, '누군가'가 내린 결정에 의해 비눗물에 씻겨 내려가고 쓰레기 포대 속의 오물들과 뒤섞여 내동댕이쳐졌다. 대구가 절망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 집단의 도덕 수준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주검'을 어떻게 예우하는가에 따라 판단할 수도 있다.
대구는 주검을 '쓰레기'로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을 누가 했는지, 그 자리에서 있으면서 그런 어처구니없는 결정에 동의하고 승인해준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누구의 명령으로 군인까지 동원할 수 있었는지... 대구 시민들은 그것을 알고 싶어한다.
◎ 고다르 03/22[13:08] 211.224.146.65
꼬얌 설은 잘 갔다왔나 ... 대구는 정말 죽어가고 있어 날씨는 정말 존 계절이 왔는데 사람들의 마음이 죽어가고 있어ㅠ.ㅠ
◎ 네꼬얌 03/22[14:55] 211.203.152.97
안감..-.-
◎ 고다르 03/22[15:44] 211.224.146.65
머시라 와..
◎ 네꼬얌 03/22[15:59] 61.111.55.197
기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