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남녀 공방전]-05.반갑지 않은 동행

[한심남녀 공방전]-05.반갑지 않은 동행

기뿐비 0 1,067 2003.11.20 04:07
버스정류장은 먼저 뛰쳐나온 엑스트라들로 붐비고 있었다.
엑스트라들은 무언가 힘든일을 겪었는지 퀭한눈에 초췌한 모습들이었다.
대구빡과 내가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 엑스트라들 중 3분의1은 갑자기 도로로 뛰어들어
지나가는 택시에 대고 따블을 외치기 시작했고
3분의1은 요즘 운동이 부족했다고 떠듬거리며 파바박 뛰어가기 시작했고
나머지 3분의1은 때맞춰 도착한 버스에 무조건 올라타기 시작했다.
버스에 올라타며 여자1이 여자2에게 다급하게 문의하였다.
'근데 이버스 어델로 가는기고?'
여자2가 여자1에게 다급하게 충고했다.
'모린다. 무조건 타라'
나는 떠나가는 버스의 뒷모습을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버스에 몸을 실은채 화려한 도시의 네온불빛속으로 사라져가는
엑스트라들이여.
저들은 과연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가.
엑스트라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버스정류장은 고요했다.
또 다시 대구빡과 나만 남았는가.....
생각하는 순간 벤취에 안은채 작금의 사태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관망하던 한 젊은이가 눈에
띄었다.
시내중심가에 위치한 학원에 다녀오는 길인지 가방을 둘러멘 어깨가 아름다운 젊은이였다.
대구빡과 나는 젊은이를 기준으로 벤취 양쪽 끝에 포진하였다.
조용히 앉아있던 젊은이가 갑자기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동시에 젊은이를 쳐다보던 대구빡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대구빡이 젊은이를 관통하여 나를 차갑게 꼴아보았다.
젊은이의 앞머리가 내쪽으로 휭 휘날리며 젊은이가 파르르 떨었다.
나 역시 젊은이를 관통하여 대구빡을 차갑게 마주 야렸다.
젊은이의 앞머리가 다시 대구빡쪽으로 휭 휘날리며 숨결에 하얀 입김을 토해내었다.
나는 젊은이를 통해 내 입장을 전했다.
'젊은이, 저쭈 앉은 사람한테 엥간하면 다음버스 타라꼬 쫌 전해줄래요?'
젊은이가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바이브레이션 이빠이 들어간 목소리로 대구빡에게 내 입장을
전해주었다.
'좌측 숙녀분께서 엥간하면 다음버스 타라꼬 전하시는데요?'
대구빡이 젊은이를 통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전해왔다.
'젊은이, 저쭈 앉은 여자한테 니나 다음버스 타라꼬 전해주소'
젊은이가 더욱 물이오른 바이브레이션에 간헐적으로 이빨을 딱딱 부딫히는 퍼커션까지
가미된 한층 풍성해진 사운드로 대구빡의 입장을 전달했다.
'우측 신사분이 니나 다음 버스 타라꼬 전하시는데요?'
대구빡과 나 사이에 형성되었던 한랭기류는 이제 눈보라를 몰아치고 있었다.
격렬한 오한 증세를 보이던 젊은이는 이제 심한 저체온증에 빠져 자꾸만 눈을 감으며 벤취에
누으려하고 있었다.
일단 사람은 살리고 봐야했다.
나는 젊은이의 싸대기를 마구 때렸다.
'젊은이, 젊은이, 눈떠봐예! 잠들면 안되예!'
대구빡도 사태의 심각성에 짙은 공감을 표하고 잠이 들려는 젊은이의 머리끄디를 잡고
벤취에 쎄리 박았다.
'젊은이, 여기서 잠들마 죽는기다! 눈 뜨야된다!'
나는 자꾸만 감기는 젊은이의 눈을 손가락으로 까뒤집었다.
순간 대구빡이 또 한번 젊은이의 머리를 들어 벤취에 쎄리박는 바람에 젊은이의 눈을 푹
찌르고 말았다.
'아악~~ 내 눈까리!'
젊은이여. 용서해다오.
고의는 아니었다.
젊은이가 한쪽눈을 싸잡고 벤취에 누워 울부짖고 있을 때....
순간 버스가 한 대 도착했다.
젊은이는 혼신의 힘을 그러모아 버스에 올라탔다.
더 늦기전에 젊은이가 탈 버스가 와서 정말 다행이었다.
.......라고 생각한 순간 그러나 나는 들었다.
버스에 오르는 순간 젊은이가 힘겹게 운전기사에게 던진 마지막 말을...
'아저씨 이버스 어델로 가는긴데요?'
아.......또 한명의 전도유망한 젊은이를 정처없는 방랑의 길로 내몰았단 말인가.
이 사회에 씻을수 없는 죄를 지었구나.
이게 다 대구빡의 탓이거늘...
대구빡은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듯 뻔뻔스럽게 손꾸락 사이에 한웅큼이나 껴있는
젊은이의 머리카락을 떼어내 바닥에 버리고 있었다.
결코 합치점을 찾아낼수 없는 상황에서도 중재에 온몸을 바치다 장렬히 사라져간 이름모를
젊은이의 모발이 맨땅에 저리도 덧없이 버려지는가....
'니는 피두 눈물두 없는 인간이가?'
'니땜에 뽑은피가 얼만데 와 피가 엄써?'
나는 대구빡이 맨땅에 마구 버린 젊은이의 모발을 마지막 한올까지 고이 수거했다.
그리고 이름모를 젊은이의 장한 뜻과 숭고한 넋을 기리며 모발을 쓰레기통에 고이 모셨다.
그 순간 드디어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나는 대구빡이 올라타기전에 출발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얼른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타자마자 버스 벽면을 두드리며 추억의 멘트를 날렸다.
'오라이~~'
그러나 야속한 운전기사는 대구빡의 승차를 허용하였다.
나는 막 버스에 오르는 대구빡을 꼴아보았으나 대구빡의 시선은 이미 나를 스쳐지나 저 뒤쪽
먼곳을 훑고 있었다.
멀리 내다볼줄 아는 놈.
순간 아차 정신을 차린 나는 고개를 돌려 촤라락 재빨리 버스 내부를 훑어보았다.
눈동자를 마하의 속도로 굴린 나머지 눈동자가 한바퀴 다 구른 뒤 뒤늦게 눈알 굴리는 소리가
또로록 들렸다.
그러나 모든 좌석은 이미 매진된 상태였다.
전좌석 매진사태 앞에 이미 전의를 상실한 나는 모친의 고무쓰레빠를 끌고 힘없이 맨뒷좌석
쪽으로 가서 손잡이를 잡고 섰다.
맨뒷좌석에는 좌측 창가로부터 정력에 좋다면 똥도 갈아마실듯한 중년남과 그 중년남의 정력
증진을 위해서라면 똥도 갈아 바칠듯한 중년여인이 상호 밀착하여 포진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똑같은 깻잎 헤어스타일을 한 소녀 둘이 나란히 거울에 머리를 박고 여드름을 짜고
있었다.
그리고 그옆, 우측 창가에는 깻잎에 대비되는 상추 헤어스타일의 중년여인이 포진하고 있었다.
제일 뒷좌석의 캐릭터들을 대충 파악했을 무렵 상추여인이 내릴 기세로 둔부를 살짝 드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나는 100미터 스프린터 자세로 괄약근에 힘을 준채 바짝 긴장하고 대기했다.
그러나 어느새 내 옆라인에는 대구빡이 나와같은 자세로 대기하고 있었다.
코스상 내 왼쪽에 서있는 대구빡이 제일 오른쪽 창가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면 코스이탈로
실격사유가 될만 했지만 순순히 판정에 승복할 대구빡이 아니었다.
상추여인이 일어섰다.
100분의1초 싸움이었다.
나는 할인점의 폭탄세일 때 모친이 선보였던 폭발적인 스피드와 동물적인 감각을 승계하여
간발의 차이로 대구빡을 제치고 자리를 선점했다.
그 과정에서 옆자리의 깻잎머리소녀의 무릎과 모친의 고무 쓰레빠 사이에 약간의 마찰이
있었지만 분쟁의 소지가 될 정도의 강도는 아니었다.
대구빡은 분노의 탄식을 내지르며 나를 꼴아봤지만 나는 대구빡을 무시하고 쓸쓸한 눈빛으로
창밖에 스쳐지나가는 도시의 화려한 네온불빛들을 바라보며 그 화려한 야경 저편에 지금도
어딘가에서 정처없이 헤메고 있을 엑스트라들의 고단한 삶과 애환을 뜨거운 가슴으로
껴안고 있었다.
이 뜨거운 가슴을 버스정류장의 이름모를 젊은이에게 바친다.
우수어린 눈빛으로 삶의 고뇌에 젖어있는 순간 옆에 나란히 앉은 두 소녀의 다이알로그가
들려왔다.
'아...존나 짱나구로. 껍데기 다 버껴졌네'
내 옆에 앉은 깻잎머리 소녀가 약 1센치 가량의 벌건 기스가 난 무릎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 옆에 앉은 똑같은 깻잎머리 소녀가 침을 찍어 상처에 발라 간호를 해주며 친구의 아픔을
위로했다.
'다리도 존나 알차게 생겼구만 서서 가면 되지'
앞에 선 대구빡이 대구리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존나시스터즈에게 여학생들의 그 예쁜 입에서 어떻게 존나라는 소리가 그
렇게 쉽게 나오느냐고 말하.........려다가 존나시스터즈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목구멍까지 올라
왔던 그 예쁜 입이라는 단어를 급히 삼켜야만 했다.
제발 니네들이 공부라도 잘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내가 하려던 말을 급히 삼키고 금붕어 기도하는 자세로 멈춰있자 존나시스터즈가 어쩔건데
하는 표정으로 나를 야렸다.
벌린입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멘트를 강구해야만 했다.
'요새는 여자도 존나나?'
아.......준비없이 급조한 것이 화근이었다.
장내의 신사숙녀 여러분의 놀란 시선이 전부 나에게 집중되었다.
정력남녀마저 잠시 샴쌍둥이 놀이를 멈추고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만 대구빡만이 예상한 결과라는 듯 여유롭게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고 있었다.
나는 일단 정력남녀에게 본분을 지킬 것을 충고하였다.
'하던일 계속 하이소'
그리고 술렁거리는 장내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정리했다.
즉각 눈을 감고 자는척했다.
존나시스터즈의 다이알로그가 다시 들려왔다.
시각의 기능을 차단하니 청각의 기능이 극대화되었다.
'존나 비겁하네'
너네들도 언젠가 내 나이가 되면 처신을 위해 때론 비겁해져야만 하는 아픔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적절한 타이밍에 입맛을 한번 다셔주며 수면연기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내가 대적을 피하자 존나시스터즈는 야비하게도 측면공격을 가해왔다.
'존나 알차다'
빨때마다 줄어들던 모친의 야유회기념 추리닝이 다소 낑겼단 말인가.
나는 자는척하며 다리를 살짝 꼬았다.
'존나 퍼렇다'
체내에 과다축적된 염록소가 버스천장의 조명을 받아 더욱 영롱하게 그 빛을 발하는 것인가.
나는 자는척하며 고개를 살포시 숙였다.
'존나 울창하다'
수면연기에 몰입하느라 잠시 방심한 사이에 수풀림이 삐져 나왔단 말인가.
나는 이제 더 이상 참을수가 없었다.
보라. 저 형용사들을....
저것이 진정 사람을 묘사하는 형용사라 할수 있단 말인가....
나는 눈을 번쩍 뜨고 존나시스터즈에게 때론 지나친 솔직함이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는
가르침을 역설하려고 입을 벌렸다.
그러나 그순간 들려오는 위협적으로 쫙 깔린 목소리.
'존나 시끄럽네'
대구빡이었다.
대구빡은 존나시스터즈를 이빠이 꼴아보고 있었다.
존나시스터즈는 대구빡의 찢어진 눈에 감히 대적하지 못하고 찌그러졌다.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정녕 저 대구빡이 나의편을 들어주고 있단 말인가.
나는 순간 먹는것에 눈멀어 대구빡을 증오했던 속좁은 내자신을 반성했다.
대구빡아. 너도 그리 나쁜놈만은 아니었구나.
'너거땜에 시끄러버서 잠을 몬자겠잖아'
대구빡아. 자다 깨서 목소리가 그리도 쫙 깔렸던 게냐.
버스 통로에 서서도 잘수 있다니.
참으로 아크로바틱한 재주의 소유자로구나.
찌그러져있던 존나시스터즈 중 내옆에 앉아있던 소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존나 미안하다 친구야. 악의 구렁텅이에 니 혼자 두고 먼저 내리서....'
안된다 존나1아.
니가 내리면 그 자리에 누가 앉을지는 자명하지 않느냐.
집까지 그 먼길을 어찌 대구빡과 나란히 앉아서 가라는 것이냐.
'니 와 내리는데?'
'우리집 다와서 내리예 와요?'
존나1아. 지금까지 완벽하게 일관성을 지켜왔건만 존나 우리집이라고 하지 않은게 옥의 티로
남는구나.
존나1이 내리고 나자 대구빡은 존나2와 나 사이의 자리에 비집고 앉았다.
대구빡이 착석하자 맨뒷자리는 갑자기 극심한 과포화 상태가 되었다.
대구빡에 밀려 더욱 견고한 밀착상태가 된 정력남녀는 이 사태를 환영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대구빡의 양 옆으로 앉은 존나2와 나는 대구빡이 가해오는 강한 프레스에 지옥의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아...존나 미네'
존나2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러나 대구빡이 한번 야리자 바로 죽어버렸다.
존나2야. 너무 짧고 굵게 사는거 아니냐.
버스가 커브를 돌자 대구빡의 온몸이 나를 덮쳐왔다.
'쫌 밀지마라'
'주디 치워라. 마늘냄새 난다'
'니는 안쳐문나?'
'안뭇다'
'와 안문는데? 꼴에 골라묵나?'
'마늘묵고 사람되까봐 겁나가 몬무따 와?'
'니는 어데 토한냄새 안나는줄 아나?'
존나2가 스르륵 일어나더니 버스 앞부분으로 가서 섰다.
정력남녀가 붙은채로 슬며시 일어나더니 버스 앞부분으로 가서 섰다.
잠시후 버스 내부는 앞부분은 사람들로 바글거리고 뒷부분은 텅빈채 대구빡과 나만 남은 기
형적인 풍경을 연출하였다.
그저 남들과 같이 사회속에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소외되지 않고 살고 싶은 내 소박한 바램
은 정녕 이리도 요원한 것인가.......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이 여인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들은 선영님들 사이에는 실의에 빠
진 이 여인을 돕기위해 1인 1추천 운동이 자발적으로 벌어졌다고 전해진다. 헐~)

61.254.17.210홀로서기 11/20[08:56]
아 웃겨죽어 ㅋㅋㅋㅋ 나도 오늘 조금서서왔더니 다리가 아푸던데 ㅋㅋㅋ
211.204.230.15KENWOOD 11/20[09:16]
존나멋찐,,,존나시스터즈,,,
대구오심,,,존나시스터즈를 볼수있슴,,,
211.224.193.242고다르 11/20[09:29]
존나 잼있어^^
211.224.193.242니와토리^ㅣ^"" 11/20[10:31]
다음이 존나 기대되여~^-^;;
211.44.178.154공작가 11/20[16:42]
나도 존나 시스터즈에게 쌍욕으로 맞대응한적 있는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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