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남녀 공방전] 27. 대구빡의 빈자리

[한심남녀 공방전] 27. 대구빡의 빈자리

기뿐비 0 1,110 2004.04.26 22:02
대구빡이 사라진지 일주일이 지났다.

모친은 대구빡을 찾아 미국에 가겠다고 영어공부에 일로매진중이었다.

본인의 레벨을 파악하지 못한채 들입다 EBS 수험생용 영어강의를 듣던 모친은 5분만

에 외계어 나불대는 EBS 폭파한다고 날뛰더니 다음날로 아래층 용식이의 유아용 영어

그림책을 강탈해왔다.

영어그림책의 첫페이지에는 입에 칼을 문 처키가 눈까리 부릅뜨고 분홍색 풍선을 노

려보고 있었고 풍선안에는 피가 뚝뚝 흐르는 빨간 글씨로 Hello 라는 단어가 아로새

겨져 있었다.

도대체 이 출판사의 사상이 무엇인가...

모친은 Hello라는 단어에 밑줄을 쎄리 그어가며 만학의 열정을 불사르더니 출근하는

나를 붙잡고 그간의 학습성과를 발표하였다.

"잘들어봐라"

모친은 선천적으로 살벌하게 생긴 얼굴에 억지로 똥찌그리한 미소를 띄우며 얼굴높이

에 손바닥을 펼쳐들고 어색하게 흔들었다.

"훌라!"

모친이여...고도리에서 훌라로 종목변경했나요...

"틀리따"

모친이 흠칫하더니 다시 영어그림책을 펼치고는 Hello 밑에다가 밑줄을 긋기 시작했

다.

죄없는 종이가 결국 빵꾸가 나고 말았다.

공부도 힘으로 하는구려...

종이를 걸레로 만들어 놓고 모친은 자신있는 표정으로 손바닥을 흔들었다.

"홀로!"

내평생 그리도 외롭고 고독한 인사는 처음 들어보는구려...

일주일동안 쎄빠지게 공부한 성과가 겨우 이정도란 말인가요...

모친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이유가 과연 여의치 못한 가정환경 때문이었는지 살

포시 의심이 드는구려...

"헬로도 모르나?"

"헬로 쫌 안다꼬 유세떠나?"

"유세가 절로 나오네"

모친이 입가에 비웃음을 띄고 나를 깔아보았다.

"천년여왕 주제에.."

온가족이 모여 단란하게 티비 퀴즈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어느 저녁, 신라최초의 여왕

을 묻는 20점짜리 문제에 천년여왕이라고 주장하여 평화로운 가정에 잔잔한 파문을

던졌던 나의 아픈 과거를 들추어 내다니...

그렇다면 자신의 대답은 기억나지 않는것인가...

나는 당당하게 모친을 마주 깔아보았다.

"양귀비보다는 낫다"

모친이 움찔하더니 파박 영어그림책을 펼쳐들고 내일 당장 사법고시 보는 고시생 포

즈로 이빠이 밑줄을 쎄리 그었다.

이제와서 그런다고 처키가 박사학위 주나요...

헬로의 다양한 버전으로 미루어 보건데 환갑전에 그책 마스터하기는 글렀구려...

"때리치아라 고마!"

"그라마 우리사위 데꼬온나"

어찌 맞이한 새세상인데 또다시 암흑의 시대로 돌아가란 말인가...

"싫다!"

"싫으마 시집가라"

아...이 얼마나 유치함의 탈을 쓴 고차원적인 압박인가...

"혼자 살끼다"

"혼자 죽어봐라"

모친의 지압쓰레빠가 내 대구리에 작렬했다.

그러나 대구빡이 사라져버린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뚜드려 맞은 대구리는 이제 굳은

살이 보호막을 형성해주고 있었다.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의연하게 모친의 쓰레빠에 내 대구리를 맡겼다.

"뭐고?"

당황한 모친이 지압쓰레빠의 엠보싱을 점검했다.

"마음껏 쳐라!"

이제 모친의 쓰레빠 고문도 더 이상 대구빡 없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나의 힘찬 발걸

음을 막을수는 없었다.

대구빡아...이대로 영원히 사라져다오...


대구빡이 사라진지 보름이 지났다.

존나1에게 치명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드디어 존나1의 양식인 햇반이 떨어진 것이었다.

늙은제비는 눈물겨운 부성애로 비밀리에 집에서 밥을 지어와서 존나1이 퍼먹고 버린

햇반통에다가 밥을 담고는 뚜껑을 딱풀로 붙였다.

늙은제비가 자체제작한 수제 햇반을 막 진열대에 올려놓는 순간 출입문이 열리며 존

나1이 들어왔다.

오늘도 외로이 학원가의 그늘을 떠돌다 지친 가여운 어린 소녀는 영혼의 양식인 햇반

을 퍼먹기 시작했다.

햇반을 한숟가락 입에 퍼넣은 존나1의 표정이 팍 굳었다.

"햇반맛이 존나 이상하다"

늙은제비가 움찔하더니 고개를 푹 쳐박고 파바박 주판알을 튕기기 시작했다.

순간 돼지뽄드로 붙인 자리가 쩍 갈라지며 주판이 두동강났다.

늙은제비가 주판을 가슴에 모아잡고 나를 꼴아보았다.

"무라내라!"

파손된 주판은 그렇게 가슴에 사무치면서 어제가 내 월급날이었다는 사실은 안중에

도 없단 말인가...

나는 늙은제비의 눈길을 피하지 않고 마주 꼴아보았다.

"월급주이소!"

늙은제비가 고개를 푹 쳐박고 스카치 테이프로 주판을 붙이기 시작했다.

"아...안즉 쓸만하네"

"돈 하나도 없어예?"

"우...우리가게에 없는거 쫌 찾지마라"

아버지가 해주신 햇반을 퍼먹던 존나1이 날카로운 눈길로 나를 감정했다.

"빠박이랑 존나 똑같네"

아직도 찌라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대구빡과 나를 연결시키려는 것이냐..

시니어 찌라시가 주니어 찌라시의 발빠른 정보수집력에 대한 기대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글마 봔나?"

"언지. 아부지는?"

주니어 찌라시가 시니어 찌라시의 노련한 정보수집력에 대한 기대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내도 몬봤다"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가로젓던 찌라시부녀가 동시에 눈을 반짝이며 나를 돌아보았

다.

"내도 몬봤어예!"

최종적으로 대구빡의 실종을 확인한 찌라시부녀는 화제슈퍼를 찌라시의 광풍속으로

몰아넣었다.

"코빼기도 안비네"

"존나 행방이 묘연하다"

"하늘로 솟았나?"

지리산 반달곰만한 대구빡의 신체구조를 감안하지 못한 늙은제비의 추측에 존나1이

회의를 표명했다.

"존나 무리다"

"비행기 타마 된다"

먹고죽을 돈도 없는 대구빡의 재정상태를 감안하지 못한 늙은제비의 추측에 존나1이

또다시 회의를 표했다.

"비행기표는 공짜가?"

"맞네"

매너리즘에 빠져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라는 식상한 표현에 무임승차 하려

다가 떠오르는 차세대 찌라시의 의욕적인 문제제기에 일격을 당한 늙은제비가 재기

를 노리며 미간에 손꾸락을 박고 절치부심 고민한 끝에 참신한 설을 제기했다.

"그라마 여장하고 댕기는거 아이가?"

존나1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입에서 방금 먹은 밥풀이 투두둑 떨어졌다.

"존나 쏠린다"

대구빡이 여장한 모습을 상상하자 내입에서도 어느새 반쯤 소화된 이름모를 풀들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늙은제비가 자신 역시 솟구치는 구역질을 모가지를 부여잡고 억지로 참으며 결자해지

의 자세로 직접 사태를 수습했다.

"물의를 빚어가 미안타"

연이은 고배를 마신 시니어 찌라시가 이제 자신의 시대는 갔다고 한탄하며 의기소침

해진 틈을 타고 주니어 찌라시가 치고나왔다.

"죽었는거 아이가?"

존나1아...또 사망설이냐...

의욕은 높이 산다만은 아직은 찌라시계에서 대성하기에는 레파토리가 부족하구나...

시니어 찌라시가 급부상하는 신진세력을 견제하며 명확한 근거의 제시를 요구했다.

"와 그래 생각하노?"

"죽는거는 무거버도 되고 돈 엄써도 되잖아"

존나1의 빈틈없는 논리앞에 늙은제비가 무릎을 꿇었다.

"맞네"

공중부양설에 이어 성전환설을 거쳐 사망설까지 모듬 스페샬 찌라시 메뉴를 선보이

던 찌라시부녀는 이제 중지를 모아 사망설로 가닥을 잡았다.

늙은제비가 아련한 눈길로 대구빡과의 짧은 우정을 회상했다.

"외상만 안하마 좋은놈이었는데..."

존나1이 무료한 일상에 잠시나마 여흥을 제공해 주었던 대구빡의 업적을 기렸다.

"맷집도 존나 쎈는데..."

"여자하나 잘몬 만나가 결국..."

"존나 파마...존나 페달..."

존나1이 낑낑거리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존나1아...팜므파탈을 말하고 싶은것이냐...

심하게 무리하는구나...

찌라시부녀가 동시에 나란히 고개를 돌려 나를 꼴아보았다.

"내가 뭐 우쨌다꼬예?"

"손안대고 니가 죽인기다"

"존나 게으른 살인자다"

가만히 있는놈 지네맘대로 죽여놓고 나에게 살인자의 누명을 뒤집어 씌우려는 것인

가...

나는 부르르 떨리는 주먹으로 카운터를 쾅 내리쳤다.

"쌩사람 잡지 마이소!"

찌라시부녀가 움찔 뒤로 물러섰다.

"우...우리도 죽일라 카는갑다"

"조...존나 부지런한 살인자다"

존나1아...너무 일관성 없는거 아니냐...

"내가 죽이따는 증거 있어예?"

확실한 증거제시를 요구하자 찌라시부녀가 잠시 주춤했으나 곧 늙은제비가 노련하게

반격했다.

"그라마 니가 안죽이따는 증거인나?"

"그거야..."

아...할말이 없구나...

사라진 대구빡을 찌라시부녀 앞에 데려다 보여줄수도 없고 무슨 수로 내가 놈을 안죽

였다는 것을 증명한단 말인가...

존나1이 마지막 낙인을 찍었다.

"존나 과묵한 살인자다"

이대로 살인자의 누명을 뒤집어써야만 하는것인가...

대구빡아...억울한 누명을 벗을수 있도록 딱 한번만 나타나다오...


대구빡이 사라진지 삼칠일이 지났다.

떡두꺼비같은 회충을 출산하고 산후조리에 들어갔다 해도 지금쯤은 한번 나타날때도

되었건만...

대구빡은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찌라시부녀는 나를 대구빡 살해범으로 113에 신고할것인가 119에 신고할것인가를 두

고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내가 남한에 불싸지른 간첩인가요...

찌라시부녀가 쎄리 꽂는 지탄의 눈길을 피해 유리문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뭔가 반짝 빛나는 물체가 순간적으로 눈꼬리를 스쳐 지나갔다.

혹시...햇빛을 받아 빛나는 대구빡의 대구리는 아닐까...

그때 출입문이 열리며 배구공이 붕 떴다.

오옷...역시 대구빡이었구나...

내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느냐...

그러나...배구공위에 암수 서로 정답게 널려있는 두가닥의 머리끄디는...

108동 홀애비였다.

홀애비는 힘겹게 문을 열고 들어와 카운터로 걸어오다가 갑자기 푹 주저앉았다.

"이놈의 지긋지긋한 관절염!"

제발 여기서 별세하지는 말아 주시구려...

늙은제비가 파박 달려가 홀애비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어르신 뭐 드리까예?"

"뭐 살라꼬 온기 아니고예..."

늙은제비가 홀애비를 부축하던 손을 팩 놓았다.

그러자 홀애비가 고대로 다시 바닥에 푹 주저앉았다.

"메...메치니코프 한 개 주이소"

홀애비여...생명연장의 꿈을 꾸는것인가...

늙은제비가 번개같이 메치니코프를 갖다 주고는 친절하게 홀애비를 부축해서 카운터

에 앉혔다.

"어르신 편하게 드이소"

"빨대 쫌 주실랍니꺼?"

꺽어마실 힘도 없나요...

나는 쪼그라든 입술을 오물거리며 빨대로 메치니코프를 쪽쪽 빨아먹고 있는 홀애비

를 똥찌그리한 눈길로 꼴아보며 물었다.

"왠일이라예?"

"메리씨한테 할말이 쫌 있어서예"

늙은제비가 반짝 눈을 빛내며 나에게 물었다.

"니랑 아는 분이가?"

"전에 선 본 사람이라예"

늙은제비가 저승에 한다리 걸친 홀애비의 자태를 살피며 떠듬거렸다.

"주...중후한 매력이 도...돋보이시네예"

삼년가뭄 끝에 찾아온 단비같은 매상을 올려준 고객에게 차마 혹평을 할 수는 없었

던 것인가...

그러나 늙은제비의 눈물겨운 고객관리를 존나1이 물거품으로 만들어 놓았다.

"존나 삮았네"

늙은제비가 홀애비에게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보이며 얼른 존나1의 발언을 무마했다.

"이...이해하이소. 아가 너무 정직해가꼬..."

늙은제비여...그말이 더 상처가 되겠구려...

홀애비가 억지로 썩은미소를 지었다.

"바...발랄하네예"

메치니코프를 다 빨아먹고 기력을 회복한 홀애비가 목을 움츠리고 경계의 눈길로 슈

퍼안을 두리번거렸다.

"머리 벗겨진 총각은 어디 갔습니꺼?"

머리끄디 두가닥 있다고 유세떠는 것인가...

"가는 벗겨진기 아이고 밀은거라예!"

아...내가 왜 대구빡을 변호해주고 난리인가...

늙은제비가 파박 끼어들어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글마 죽었으요"

홀애비가 애도의 뜻을 표했다.

"젊은사람이 안됐습니더"

안됐다고 하면서 표정은 잘됐다구려...

존나1이 표리부동한 홀애비의 작태를 날카롭게 꼬집었다.

"존나 속보이네"

늙은제비가 얼른 존나1을 제지했다.

"야가 오늘따라 와이카노?"

늙은제비여...존나1이 항상 그랬지 언제 오늘따라 그랬나요...

존나1이 반항적인 눈빛으로 턱을 팩 치켜들고 거짓과 위선으로 얼룩진 어른들의 모습

에 일침을 가했다.

"어른들의 세계는 존나 가식적이다!"

늙은제비가 파박 손으로 존나1의 입을 막았다.

"마...말씀들 나누이소"

늙은제비가 존나1의 입을 막은채 구석으로 끌고가서 조용한 대화의 분위기를 마련해

주자 홀애비가 수줍은 표정으로 두가닥 머리끄디를 꼬았다.

"우...우리 둘만의 시간이네예"

신년특선 원로와의 독대 담화인가...

어서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로구나...

"할말이 뭔데예?"

"요앞 시장에 가가 단팥죽이라도 한그럭 같이 하자꼬예"

참으로 본인의 치아상태에 적절한 메뉴선택이구려...

"단팥죽 안좋아해예"

"그라마 호박죽이라도..."

홀애비여...죽부페 차렸나요...

"혼자 실컨 드이소"

멀리서 지켜보던 늙은제비가 안타까운 관전평을 날렸다.

"메뉴가 너무 단순하네예"

존나1이 입을 막고있던 늙은제비의 손을 팩 치우고 해설을 덧붙였다.

"존나 죽쑤네"

나는 두가닥 남은 머리끄디를 안뽑히게 기술적으로 쥐어뜯으며 처절한 자기반성에 몸

부림치는 홀애비에게 단호하게 독대종료를 선언했다.

"할말 끝났으마 고마 가주이소"

"관절이 쑤시가꼬..."

홀애비가 관절을 핑계로 의자에 밍기적거리며 개겼다.

"고마 가라 카잖아예!"

나는 홀애비의 목깃을 잡고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순간 홀애비가 비틀 몸의 균형을 잃으며 안넘어지려고 팔을 버둥거리다가 얼떨결에

내 손목을 덥썩 잡았다.

감히 어딜 잡는 것인가...

남자들이란...저승에 한다리 걸치고도 싱그러운 여체를 탐한단 말인가...

"이 영감탱구가 죽을라꼬!"

나는 홀애비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쓰레빠를 벗어 치켜들었다.

다음순간 홀애비는 흔적없이 사라지고 출입문 아래에는 트라스트만이 외롭게 떨어져

있었다.

인간승리의 신화는 계속되는구나...

찌라시부녀가 어리둥절한 눈길로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방금 뭐 지나간나?"

"존나 순식간이라가 잘 모르겠다"

대구빡이 사라지고 나니 이젠 다 죽어가는 홀애비가 추근대다니...

대구빡이 버티고 있었으면 감히 내옆에는 얼씬도 못했을 것을...

대구빡아...어디에서 무얼하고 있느냐...

사상최초로 너의 빈자리가 그립구나...


218.235.64.188홀로서기 04/26[23:04]
아웅 대답도 없더니 이거 올리고 있었던거야? ㅋㅋㅋ 눈감겨서리 먼 내용인지도 몰것다 ㅋㅋ 잘자~
211.40.132.62KENWOOD 04/27[09:31]
그리움이라,,,
218.50.182.178아웅 04/29[05:31]
언제까지일까?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