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고운사 입니다. 여기서 고운(孤雲)은 고운 최치원의 호 입니다. 다시말해 이 사찰과 최치원은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 이지요...
고운은 신라후기 대 학자이자 당나라에서 까지 높은 관직을 얻어 그 명성이 대단하였다고 합니다. 이 나라 이 땅의 최초의 시(詩)인이었고 일찍이 성혼은 "용재총화"에서 "우리나라 문화는 최치원에 와서야 최초로 발휘되었다"라고 하였을 정도 입니다.
더욱 고운을 신비스럽게 하는것은 그가 합천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 홍류동 계곡에서 말년을 보냈는데 어느날 갓과 신만을 가지런히 놔두고 어디론가 사라졌고 이를 보고 모두들 신선이 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것이 최치원의 마지막이고 역사속에 전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훗날 조선중기 대 문호 우암 송시열은 가야산 홍류동을 찾아와 "가야산 신선이 간지 이미 천년이 지났거늘 내 신선을 찾아 여기에 와 있으니 참으로 웃지 못할일이로구나"라고 하였다.
최치원은 이곳에 "가운루"와 "우화루"라는 두개의 루각을 건립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이곳의 이름이 고운사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충남의 마곡사처럼 이 사찰 역시 가운데로 조그마한 물줄기가 흐르며 사찰을 두개로 쪼개 놓았습니다. 하지만 옛 사람들은 이곳에 날아갈듯 멋드러진 다리를 하나 세우고 그 이름도 멋드러지게 가운루라 하였습니다.
자연의 불리한 지형을 다리 하나로 완벽하게 극복하며 오히려 더욱 완벽한 구성을 도모하였습니다. 물길에 의해 나뉘어진 사찰은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보다 큰 효과를 얻고 있습니다.
새롭게 단청을 칠해 옛 정취는 사라졌지만 이 구름다리위에 앉아 있으니 고운의 싯귀가 귓전을 울리는 듯 합니다.
獨樂...
참고로 사진을 보면 별로 높지 않은 다리인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매우 높습니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보면 아찔할 정도로....^^ 제가 워낙 높은 곳을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요....^^
아침이오면 03/13[01:22]
아~ 정말로 우리 선조들의 지혜란~ 놀랍기만하네여 ^^;;
애플 (

) 03/14[00:04]
독락님 글을 읽고 나면 무언가 생각하게 합니다. 또 다음편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