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도배...부산국제영화제-11

지각도배...부산국제영화제-11

moxnox 0 215 2003.10.18 22:02
관객 : 발톱을 클로즈업한다거나 발의 흉터에 주목하는 화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이를 두고 혹자는 감독님께서 페티시즘 취향을 가지셨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관객들 웃음) 그런 발이 나오는 샷을 자주 쓰신 이유가 있습니까?

김지운 (감독) : 두 가지 주요한 이유가 있는데, 다른 이유가 있다면 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저도 모르겠고요. 페티시즘이란 것을 전 잘 모르겠지만 자신이 선호하는 것, 대상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라고 알고 있는데 페티시즘이 있는건 아니에요. 공포영화는 섹슈얼리티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발전해온 것 같아요. 뱀파이어나 드라큘라와 같은 흡혈귀 영화들은 섹슈얼리티가 아주 핵심적인 요소로 영화를 지탱하는거죠. [장화, 홍련]에서 발을 찍는 것은 두 가지 의도가 있었는데요. 하나는 샷의 구성이나 이동에 있어서 장르적인 장치로 이용한 것인데 종국에 결정적인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중간에 미스터리한 전개에 의한 긴장감의 발생과 고조가 필요합니다. 얼굴 같은 곳은 표정이 드러나는데 발은 무표정하죠. 그러니까 관객들에게 아직 무엇인가를 전달하지 않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객들의 궁금증을 계속 유지시킬 수 있다는 점이 호러영화의 한 장치로서 발을 따라가면서 마지막에 결과물을 보여주는 아주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장치 중의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이들은 맨발이고 어른들은 실내화를 신거나 양말을 신는 등의 단순한 대조를 통해 기성세대와 자연상태의 소녀들을 대비하고 세대의 경계를 보여주는거죠. 다행히 두 여배우 중 한 분은 예쁜 다리를, 다른 한 분은 튼튼한 다리를 보여주셔서 나쁘지 않게 나왔습니다. 어쩌면 그 다리들의 대비 때문에 인상을 가져올 수도 있었겠지요.

관객 : 감독님께서 만드신 [쓰리]에서는 아파트라는 상당히 황량한 공간을 보여주셨는데 [장화, 홍련]에서는 상당히 고풍스럽고 클래시컬한 세트 디자인을 보여주셔서 공간의 효과를 나타내셨는데 이 세트 디자인은 절대 한국적인 디자인이 아니거든요. 건물 자체도 일식 디자인이고 평면도도 그런데 이런 세트 디자인이 감독님의 감각인지 세트 디자이너 한 사람의 결과물인지요.

김지운 (감독) : [메모리즈]같은 경우에는 주제를 배경을 통해서도 전달을 했는데, 신도시의 황량함과 황폐함을 전달하기 위해서 건조한 영상을 만들려고 했고 그러기 위해 와이드 앵글을 많이 썼습니다. 와이드 앵글에서는 피사체의 심도가 깊어서 전후 및 면과 선이 모두 또렷하게 나타납니다. 반대로 [장화, 홍련] 같은 경우엔 인물의 상태, 내면의 복잡미묘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인물을 쫓아가는 느낌이 드는 망원렌즈를 많이 이용했습니다. 영화의 컨셉과 주제에 따라 렌즈의 사용을 바꾸는 거죠. 일본식 목조건물의 경우에는 제가 공간을 설정할 때 정신적인, 영화 주제적인 그리고 기능적인 측면을 고려합니다. 공포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사운드에 의한 긴장감, 블랙화면에서 출처를 모르는 소리에 의한 긴장감을 주기 위해 소리가 많이 나는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옛날 목조 건물일수록 그런 소리가 많이 나기 때문에 목조건물을 채택한 것이죠. 우리나라에 그런 목조건물양식이 없거든요. 그래서 일본식 목조건물을 이용한 겁니다. 하지만 그런 목조건물이 우리나라에 없는 건 아니거든요. 부산에는 모르겠지만 서울이나 다른 곳들에 일본식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거든요. 그리고 일본식 건물에 서양식 가구나 벽지들을 이용한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공간을 만들어낼 때 청산되지 않은 기억에 대한 공포와 그 속에서 흔들리는 사람을 표현하려는 의도를 가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역사적으로 일제의 잔재와 미군정 이라는 청산되지 않은 과거, 그런 우리 근대성을 이루는 외상이나 흔적들을 컨셉으로 삼았습니다. 정리하자면, 목조건물에서 나오는 사운드가 가장 필요했었고 공간 컨셉이 지옥에 대한 이야기이고 어떤 청산되지 않은 기억에 대한 부분, 그런 것을 통해서 역사적으로는 일제의 잔재와 미군정 하의 청산되지 않은 과거를 표현한거죠. 요점을 말하면, 돈이 남아돌아서 그런 공간을 꾸민 것은 아니고 그렇게 아름답고 평온한 공간이 순간적으로 변하며 영화가 진행될수록 낯설고 그로테스크해지는 것을 염두에 둔거죠.

감독님의 여러 작품을 보면 한정된 세트나 좁은 공간을 배경으로 이용하시는 것 같은데요. 어떤 의도가 있으신건지요.

김지운 (감독) : 하다보니 그렇게 됐는데요.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무엇이 부족한가 생각해봤더니 하나의 큰 이야기를 구사하는 것은 강한데 미시적인 접근에 의한 드라마가 약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시적인 접근을 하기 위해서는 공간들에 대한 제약이 요구되는데요. 미시적인 공간에서 우주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연출력이고 극작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트인 공간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잘 하는데 한 공간에서 많은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국민성까지 언급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 드라마에서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작은 공간에서도 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은 쓰는 사람 입장에서의 욕심이 작용했던 것이겠죠.

임수정 씨가 촬영이 있었음에도 오늘 특별히 찾아오셨는데 수정씨께도 질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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