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잔 이야기

소주잔 이야기

석실장 0 801 2003.12.20 20:05
아주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자주 가는 막걸리집 여주인은 엄마고 그 딸은 우리들을 오빠라 불렀습니다. 군대 가기전에 단골집이였고 제대한 후에도 계속 그 술집에서 막걸리도 마시고 소주도 마시고
그랬네요. 그리고 손님이 많으면 아들?인 내가 서빙도 했는데

아마 계절적으로 요 무렵입니다. 하루는 손님이 물 한잔 달라면서 맥주컵을 내밉디다. 바로 옆 독에 물이 찰랑하니 있는데 손잡이 없는 이 맥주컵으로 물 담기가 약간 위생적으로 염려됩디다.

그래서 엄지와 검지로 술잔을 가볍게 쥐고 날렵하니 물표면을 훑었는데 컵에 담긴 물 무게로 힘뺀 손가락 사이에서 컵이 빠져 툭! 바닥에서 깨어지더군요. 미안해라 창피해라 발로 구석으로 깨어진 컵을 밀어넣는다는게 찼나봐요. 챙그랑! 우리 엄마 눈꼴이 세모꼴입니다. 원래 우리 엄마 성질 더러버 주위에서 알아주는 여사였는데, 나를 비롯한 친구들 얌전타고 외상도 해 주었지요. 그 엄마랑 외상 튼 거 내가 처음이였답니다.

각설하고
그집 딸이 생일을 맞는 날 친구와 함께 축하차 통닭을 사주기로 하고, 난 당구장에서 둘을 기다렸는데 아니 옵디다. 내려가 보니 두 남녀는 훨씬 앞 시간에 나란히 나갔고, 통딸ㄱ이 먹고 싶은 엄마께서 딸의 뒤를 좇았는데, 남포동 그 많은 통닭집에서 딸을 못 찾았다고, 너무 분해서

방년의; 딸내미 가랭이를찢어놓을것이라고 방방 욕을 하고 있습디다. 가랭이 앞에 씨짜 넣어가면서요. 당구장에서 기다린 나는 내대로 참 혼란이구요. 근데 그 딸 못 나고 공부 못한 평범한 처녀이였어요.

다음날 저 혼자 통닭집으로 딸내미 뎃고 간 친구녀석과 술상을 두고 마주 앉은 집도 그 집이고 우리는 소주를 마셨습니다. 내 친구 구구하게 말 많은 뱐명이지 뭔지 알아듣기 힘든 구절구절한 말 듣기 싫었는데,

내 손아귀에 술이 좀 남아있는 작은 소주잔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냥 분하고 그래서 그 잔을 꼬옥 쥐었는지 꽉 쥐었는지 기억에 없지만 내 손아귀에서 분열하던군요.

앞에 친구 오라 괜찮나? 손바닥 펴보니 말짱해서 그 깨어진 잔을 구석으로 던졌는데 그때서야 유리잔 깨어지는 소리. 엄막 눈꼴 세모되드니

늬는 무슨 성질이 더러버 와레(며칠전)에는 맥주잔 던져 깨고 오늘은 소주잔 깨노?
엄마 내가 던져 깬게 아입니더. 뭐라카노 늬가 던졌다아이가

앞에 친구 아무말 없이 일어서 나가대요. 계산은 지가 했는지 모르겠고요.
혼자 어지해야 될지 민망하고 당황한 내게 그 엄마 욕이 마구 날라옵니다.
늬 군대있을때 휴가오면 밥주고 술 주고 했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 씨가랭이 없어 찢어질 가랭이 없는 대신
졸지에 인간 말짜 되었지요
이제 열 받습니다. 그래도 참고 나갈려고 일어서니 뒤통수에 날라온 말 한마다
"맥주잔 소주잔 값 물려내고 가라!"

성질나서 맥주잔에 물떠다 실패한 그 독의 물 한그릇 퍼서 확 뿌리고 광복동 큰 길로 나서는데< 참 내 쪽방이 거기서 20미터라서)갑자기 머리에 뭔가가 내려치는 충격! 직경 50센티 넘는 알미늄 다라이로 엄마께서 나를 찍은 겁니가."맥주잔 소주잔 물려내라"

그 시간 이후 그 술집에 있는 유리제품은 내가 그 술집 의자로 박살냈습니다. 상품용 소주, 맥주 그리고 쇼윈도우, 출입문 유리창. 모두를요

크리스마스 무렵의 사건입니다. 석실장 더러번 성질땜에 벌어진 일이지요.
다음 날 딸이 엄마대신 사과한다고 내 쪽방을 찾아온게 기억나네요.

유리창 값은 그 근처에서 유리창장사하는 친구가 변상조로 갈아주었고 깨어진 소주병은 우짭니까?

열 받아 참지 못하는거 지금도 비슷합니다. 나중에 남들이 넌 당연한 반응을 보였고, 그 사람은 당하는게 당연하다고요. 인생 재단하기 나름입니다.

너무 기나?

211.190.201.144일로나 12/20[20:57]
ㅋㅋㅋㅋ석실장님 글을 보면...고전문학을 접하는 기분입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소설은~~ 김유정의 동백꽃입니다. ㅋㅋㅋㅋ *^^*
210.94.66.37석실장 (stonehd577@hanmail.net) 12/21[10:51]
어지간한 악력아니고는 소주잔을 손안에서 깰 수 없다는게 중요합니다. 참고로 빈 야구르트통 손아귀에서 구겨보세요.잘 되나 안되나. 일로나야 김유정의 그 단편소설에 봅 봅 봄도
211.170.53.187구르미 12/21[14:15]
석실장님의 다른모습같아요..^^ 인자하기만한 옆집 아자씨 같으신뎅...히히^^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