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공부하는 역사공부....(궁녀)펌글

다시 공부하는 역사공부....(궁녀)펌글

맥가이버 0 703 2003.09.23 23:55
궁녀들은 왕의 성은(?)을 못 입게되면 처녀로 살아야되죠.
그래서 여자들끼리 부적절한 관계를 갖는경우도 있었구요.
걸리면 당연히 반 죽죠.
그리고 궁녀도 궁을 나가서 살 수도 있긴 한데요, 한번 궁녀는 궁을 나가서도
다른 남자와 결혼 할 수 없습니다. 그럼 둘 다 엄청난 처벌을 받죠.
궁녀는 무슨 일을 했을까?
궁녀들은 주로 일상 생활과 관련된 일을 했는데, 각각의 역할에 따라 소속 부서가 나뉘어 있었습니다. 왕의 침실을 담당하는 '지밀'은 왕과 왕비의 신변 보호 및 일체의 시중과 내전의 물품 관리 등을 담당했지요. 그밖에 의복을 만들고 수를 놓는 '침방'과 '수방', 식사를 담당하는 '소주방', 음료 및 과자 등을 만드는 '생과방', 빨래와 옷의 뒷손질을 맡은 '세답방' 등에서 궁녀들이 일을 했답니다. 정식 나인이 되기까지
입궁 후 15년 정도 엄격한 교육을 받으면 정식 나인이 되어 업무를 맡게 됩니다.
입궁 나이는 부서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4-5세부터 13세까지가 일반적이었습니다. 부서의 격이 높을수록 어린 나이에 입궁하여 궁녀로서의 교양을 쌓게 됩니다. 입궁한 아기 나인들은 소속이 정해져 있었으며 그 부서의 선배 상궁이 맡아 양육했습니다. 지밀의 경우 4-5세에 입궁하여 7-8세 무렵부터 궁녀로서의 몸가짐과 궁중 용어를 배우고 글공부를 했습니다. 침방, 수방의 경우는 6-8세에 궁에 들어와 주요 임무인 바느질과 수놓는 방법을 연습하였습니다. 예의범절을 따로 교육받지 않고 생활 속에서 익혔고, 글공부는 소학 언해본을 읽는 정도였습니다. 이밖의 소주방, 생과방, 세답방의 견습 나인들은 각자 맡은 기술 습득이 주요 교육내용이었습니다.

궁녀에도 격이 있었다는데
왕과 가까이 하는 지밀이 가장 높은 부서였고, 침방과 수방이 중간 정도, 소주방, 생과방, 세답방은 상대적으로 낮은 부서였다고 합니다. 또한 일반 궁녀들의 지도자격인 상궁이 있었는데, 누구나 상궁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요. 상궁에 오르려면 견습 나인에서부터 시작해서 30년 내지 35년이 걸립니다. 상궁 중에도 간부가 있었는데, 바로 궁녀의 대표인 제조상궁입니다. 제조상궁은 왕명을 받들고 내전의 재산을 관리했습니다. 이들의 권세는 정승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궁녀는 대개 4,5살 때 입궁하나 간혹 열살이 넘어 입궁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궁중 의녀가 앵무새의 생피를 팔목에 발라 처녀성을 감별하였다. 어린 딸을 입궁시킨 부모는 빨래감을 내가고 버선을 넣어주는 등 일체의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이후 각 상궁이나 내인들에게 맡겨져 그들의 자식처럼 자라고 교육을 받았는데 일생 아이를 낳지 못하는 궁녀들로서는 양자를 들인 셈이다.
입궁 후 15년 정도 지나면 관례(冠禮)를 치르는데 성년식이자 신랑없는 결혼식이다. 이후 궁녀는 두명이 짝을 이루어 한방에서 살아가는데 그러다 국왕의 손길이 닿게 되면 더 이상 궁녀가 아니라 내명부(內命婦 : 일명 후궁)로 승격되고 숙원에서 정1품 빈(嬪)까지 품계가 내려진다. 이것이 궁녀들의 꿈이지만 정말 꿈으로만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궁녀는 궁궐에서 일생을 마치지 않는다. 늙고 병들게 되면 궁을 나가 본가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도 한번 궁녀는 영원한 궁녀이다. 혼인을 해서도 안되고 첩이 되어서도 안된다. 궁궐 밖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로이 죽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궁궐을 행해야 한다.
그리고 궁녀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신분 제한이 있었다. 궁녀는 주로 중인 계급으로, 양반도 평민도 아닌 낮은 벼슬아치들의 여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운영전을 살펴보면 궁녀가 되고싶지 않았더라도 얼굴이 예쁘다거나 이런이유로 끌려온 여자도 있었던것 같네요~

월급을 받았을까?
궁녀들은 여성 관리였기 때문에 나라의 녹봉을 받았다. 매월 정기적인 보수로 쌀 세 말과 그외 옷감 등도 특별히 하사 받았다고 전해지는데, 기록에 의하면 돈으로 월급을 받기도 했다. 순종때 지급됐던 월급명세서를 기준으로 환산해 보면, 당시 가장 높은 보수였던 196원은 지금의 화폐가치로 계산할 때 약 150만원 정도에 해당된다. 궁녀들은 맡은 업무와 연차, 품계에 따라 월급을 차등 지급받았던 여성공무원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외부와 단절된 채 한평생을 궁궐에서 지내온 궁녀들은 나이가 들어 병이 들면 궁궐에서 나와야 했다. 마땅히 의지할 곳이 없었던 궁녀들에겐 또 하나의 어려움이었다. 서울 은평구 갈현동의 궁말은 궁녀가 모여산 마을이라고 해서 궁말이라고 불리웠던 곳으로, 궁궐에서 나온 궁녀들은 이렇게 마을에 모여 살기도 했고, 절에 시주하며 만년의 쓸쓸함을 달래기도 했다.
규율과 법도에 얽매여 외부와 차단된 채 외롭고 쓸쓸한 생을 보내야 했던 궁녀들. 어쩌면 이들은 봉건적인 왕조 사회의 희생자였다. 그러나, 여성의 활동이 제약받던 시기에 왕과 왕비를 보필하는 임무를 담당하며 국가로부터 정식월급을 받고 일한 이들, 궁녀들은 조선시대 최초의 전문직 여성들이었는지도 모른다.






211.217.129.54제프리 09/24[09:37]
잼나네요^^
61.72.156.126cjh 09/24[11:19]
그당시 궁녀들은 참 불행한 삶을 살았군요.
너무나 제한된 구중심처,,, 왕의 승은을 입어야 신분상승을 하고,,,
승은을 입더라두 다른 파, 다른 후궁들의 견제에 시달려야 하고...
아무턴 서양이나 동양이나 옛날여인들은 넘나 힘든삶을 살아야
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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