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보세요.
착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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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5 20:15
삼족(三族) : 세 개의 친족.
여러 가지 설이 있어 일정하지 않으나 《예기(禮記)》에서는 부(父)·자(子)·손(孫)을, 《의례(儀禮)》에서는 부의 곤제(昆弟:형제)·자신의 곤제·자의 곤제를, 《사기(史記)》에서는 부모·형제·처자 또는 부의 족(族)·모의 족·처의 족을 가리킨다.
또한 특정한 세 가족을 가리키는 때도 있는데 《좌씨전(左氏傳)》에는 예씨(洩氏)·공자(孔子)·자씨씨(子氏氏)의 삼족은 군명(君命)에 항거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대 중국·한국 등에서는 어떤 사람이 큰 죄를 범하면 삼족멸문지화(三族滅門之禍)라고 하여 혈연의 삼족을 형벌에 연좌(緣坐)시키기도 하였다.
구족(九族) : 9대(代)에 걸친 친족(親族).
일반적으로 본인을 중심으로 하여 9대에 걸친 직계(直系)친족을 말한다. 즉, 고조부모(高祖父母)·증조부모(曾祖父母)·조부모·부모·본인·아들·손자·증손·현손(玄孫)의 9대에 걸친 친족이다.
때로는 방계(傍系)도 포함하여 고조의 4대손이 되는 형제·종(從)형제·재종형제·삼종형제까지를 나타내거나, 부계 사친족(四親族)·모계 삼친족·처족 이친족을 총칭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한 사람이 불문(佛門)에 들어가면 그 공덕으로 구족이 천상으로 전생(轉生)한다고 한다.
구족에 1명 더 추가한 예도 있었습니다. 바로 스승입니다. 그래서 십족(十族)을 멸한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명나라 때 성조(成祖)가 방효유(方孝孺)의 십족(十族)을 주살한다고 하여, 방효유의 선생들까지 모조리 연좌시켜 죽였습니다.)
질문자님 예상대로 본보기로서의 의미가 강했고, 후환도 미리 제거하려고 했겠죠.
아래는 십족을 멸한 예화입니다.
출처 : http://users.sinology.org/ohys/ws/wscp06/wscprm06/wsrm0671.htm
<명대의 성조(成祖)와 방효유(方孝儒)>
명나라 때 대학자 방효유에 관해 역사서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방효유의 자는 희직(希直) 또는 희고(希古)이며, 호 손지(遜志)이고, 중국 절강성(浙江省) 녕해현(寧海縣) 사람이랍니다. 학문적으로 뛰어나고 언행이 방정해 방정학(方正學)이라고도 합니다.
일찍이 대학자 송염(宋濂)의 문하에 들어가 뛰어난 재주로 이름을 떨쳤으며, 평소부터 왕도(王道)를 밝히고 태평(太平)을 이룩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 생각하고, 세속적인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혜제(惠帝)를 섬겨 시강학사(侍講學士)로서 두터운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학자가 시대를 잘못 만난 것이 문제지요.
명태조 주원장(朱元璋)의 태자가 먼저 죽자, 주원장은 태자의 아들인 황손 주윤문(朱윤文)에게 황위를 물려줍니다.
이 명대 두번째 황제가 즉위한 4년 후인 1402년, 주원장의 네째 아들인 연왕(燕王 : 뒤의 永樂帝) 주체(朱체)가 황위(皇位)를 찬탈한 뒤, 방효유에게 즉위의 조(詔)를 기초하도록 명하게 되는데, 이 때 강직한 방효유는 붓을 땅에 내던지며 죽음을 각오하고 명을 거부하였습니다.
연왕은 노하여 방효유를 극형에 처하였고, 일족과 친우, 제자 등 847명이 연좌되어 죽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잘못된 권력과 타협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잘 따른 제자를 둔 죄로 연좌되어 죽은 스승이야말로 훌륭한 지도교수라고 해야하겠습니다만, 글쎄요. 요즘에도 그렇게 생각해 줄지는 왠지 좀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게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거나 잘못 시행될 수 있는 지도교수 책임제의 폐해를 방효유에게 비유적으로 끌어낸 전종서 선생의 기지가 제도와 현실사이의 허점을 날카롭게 찌르고 있습니다.
방효유가 남긴 저술로는 《주례변정(周禮辨正)》 등 몇 가지가 있었으나 모두 영락제에 의해 소각되고,《손지재집(遜志齋集)》(24권) 《방정학문집(方正學文集)》(7권)이 전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