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아나운서)

손석희(아나운서)

강백호 0 9,148 2004.12.17 08:00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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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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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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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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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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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이렇게 늦다 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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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그래서인지 시기에 맞지 않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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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에 맞지 않는 일을 가끔 벌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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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벌인 일 중 가장 뒤늦고도 내 사정에 어울리지 않았던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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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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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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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봄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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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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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처럼 어느 재단으로부터 연수비를 받고 가는 것도 아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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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십수년 하면서 마련해 두었던 알량한 집 한채 전세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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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돈으로 떠나는 막무가내식 자비 연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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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공부는 무슨 공부. 학교에 적은 걸어놓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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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몸 성히 잘 빈둥거리다 오는 것이 내 목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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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것이 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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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까닭은 뒤늦게 한 국제 민간재단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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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 기왕에 늦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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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라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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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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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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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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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늦게 무엇 하는 짓인가 하는 후회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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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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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 주말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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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 한두시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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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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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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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잘난 석사 학위? 그것은 종이 한장으로 남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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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더 큰 것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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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학기 첫 시험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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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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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을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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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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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방증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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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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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인생을 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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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By 손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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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글이 생각나네요...^^

하고싶은 일을 하는데 다른이들 보다 더 열심히

더 재밌게 하지 않을까여? 시기가 중요하진 않을거 같네요

약간의 고통이 따를지라도...

-강백호-

210.206.25.54노랑장화 12/17[08:18]
아침부터 좋은글 감사합니다.
222.105.106.4마뇽 12/17[09:19]
좋은 글 감사합니다. 꼭 전해줘야 할 이가 떠올르네요^^*
61.42.220.34하늘나라 12/17[09:25]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가슴에 와 닿는글이네요..
누가 머래도...내 인생은 내꺼....ㅋㅋ...먼 말인쥐..ㅋㅋ
61.72.63.211sooni 12/17[09:42]
음...
211.232.223.94★쑤바™★ (subager@hanmail.net) 12/17[10:14]
정말..멋집니다...좋은글 올려주신 백호님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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