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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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9 11:53
바람을 기다리며
창 밖으로 바람에 일렁이는 것처럼 왁 다가왔다 멀어져가는 매미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오늘은 하늘이 파랗게 빛나고 높은데다 공
기 냄새도 팍팍하고 끈기가 없습니다.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마치
가을 흉내를 내는 것 같습니다.
죽 늘어선 포플러가 싱그럽던, 따가운 햇살을 목덜미로 받으며, 할
머님의 손을 잡고 재 너머에 다녀올 때, 손으로 이름 모르는 들풀
을 훑어 내려오던 손끝의 촉감이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는 군요.
머릿속이 그 구조와 재료만 다르지 결국 VCR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조용한 오전입니다. 얼마나 조용한지 예
전에 책에서 읽었던 적도의 무풍지대라는 곳을 연상 시켜 주는 군
요.
다들 휴가중이고, 작업에도 아직 진척이 없습니다. 모두들 이 여름
을 넘길 궁리만 열심히 하는가 봅니다. 차라리 그래 수영장이 낫
지. 아냐 역시 바다 아니겠어 그 푸른 포말에 함 부서져 보라지...
하며 피곤한 머리를 쉬고픈 그들에게 한마디 부추김을 주고 싶습
니다.
대문안 가지가 넓게 퍼진 나무 둥지 그늘아래 평상에 앉아 수박씨
를 후루루 뱉으며 여름이 좋기만 하던 그 애들이 이젠 대기업으로,
자영업으로, 벤처기업으로 세상의 중심에 서서 땀을 흘리는 시기
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고단하고, 얼마나 외로우며, 또 얼마나 즐
겁고,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에어콘 바람에 식었다 더웠다 하며 끈적해진 몸을 이리저리 끌구
다니며 무지개를 ?아 도시를 떠도는 우리 친구들에게, 벤처의 동
업자 들에게 축복을!
마음 먹었던 책 몇권을 단숨에 읽어 버리곤 책의 뒷맛이 미간에
남아 있을 때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머금 습니다. 이 여름이
지나면 또 한해가 다간 텅빈 느낌으로 가슴속에 공간이 생기겠지
요.
언제 부터인가 생기기 시작한 이 공간은 얼마나 커질지, 언제까지
커질 지 알 수 없습니다. 친구를 바라보면 이젠 남아있는 시간을
챙기기 시작할 그럴 만큼 나이든 눈동자가 보이는 까닭일까요?
고즈녁한 시간의 한가운데서 가끔씩은 뒤를 돌아보며 또는 좌우를
곁눈질해가며, 저 역시 가볍지 않은 발걸음을 옮깁니다. 불현듯
Summertime의 끈적한 선율이 흐르는 듯 합니다.
천천히 은밀하고 부드럽게 우리의 일상 속으로 파고든 재즈의 선
율처럼 그리고 여름이 우리에게 주었던 그 향기를 기억할 수 있도
록, 팔목에 불거진 핏줄만큼이나 파랗게 젊었던 아버님, 아름다웠
던 어머님의 그 여름 향기가 선연하게 떠올라 잠시만이라도 유년
기의 대문안에 있는듯한 마음 편한 시간이 친구들에게 함께 했으
면 좋겠습니다.
다들 돛대를 바라보며 바람을 기다리겠지요?
편서풍에 돛은 풍선처럼 부풀고 흰구름이 수평선에서 쪽빛 배경의
하늘 끝까지 닿아 있을 때 가고자 하는 미지의 세계는 그다지 멀
지 않겠지요. 다 함께 킁킁거리며 바람의 향을 찾아 보자구요. 전
말이죠 저녁에 친구들과 마시는 생맥주 잔에서 가끔 느낄 수 있더
라구요.
서울 한가운데 우물을 파거나 펌프를 박아 등물을 해주는 서비스
는 어떨까요? 물론 나이 지긋하신 아낙들이 해 주셔야 그 거친 손
바닥으로해서 등짝이 더더욱 시원해 지겠지요.
지금까지 도곡동 무풍지대에서 김명기 였습니다.
◈ 소년s94 ─ 좋은 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