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봄꿈이었으면…
s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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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26 21:42
한바탕 봄꿈이었으면…
'無차입 경영’
최원석(58) 전 동아건설 회장이 한때 10대 그룹의 반열에 올랐던 동아를 잃고 얻은 교훈은 ‘빚 없는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1999년 여름 “구멍가게를 하더라도 은행빚 없는 경영을 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던 그는 지난 7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다시 시작한다면 빚 없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2년여 전만 해도 “다시 시작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직접 파악하고 콘트롤하겠다”던 그는 그러나 이 날 정작 재기 가능성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아침이면 눈을 뜨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일부러 잠을 더 청해 보지만 젊은 날 그 많던 잠도 오지 않는다”고 했다. 달라질 게 없는 일상의 반복이 짜증스럽기 때문일까?
“출퇴근할 곳이 있다는 건 부러운 일”이라는 말도 했다.
남들은 은퇴도 하는 나이지만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총수들도 여럿 있다. 그처럼 젊은 나이에 회장직을 승계했지만 수성(守成)에 성공한 김승연 한화 회장은 지난해 ‘전 계열사 흑자 경영’을 달성하고 대한생명 인수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두 사람은 젊은 시절 함께 어울렸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더라”고 말한 사람은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다. 최 전 회장은 그러나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나락’에 떨어져 있었다.
IMF 관리체제하에 있던 그해 98년 봄은 사실 그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결코 따뜻하지 않았다. 세계 8대 불가사의라는 리비아 대수로공사를 밀어붙인 ‘불도저’ 최원석은 요즘 동아 부실 해법의 ‘첫 단추’였던 자신의 퇴진이 과연 올바른 결정이었는가 하는 회의에 빠져 있다. 주위의 만류를 무릅쓰고 털고 일어설 때만 해도 동아가 파산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었다. 경영권 포기를 밝히는 은퇴 연설을 하면서 그는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되고 보니 무엇보다 창업주인 선친 최준문 회장에 대한 죄스러움이 컸다.
요즘 그의 주요 일과 중의 하나는 독서다. 회사 일로 바쁠 땐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성경도 꺼내 읽고 있다. 일요일이면 거의 빠짐없이 신사동에 있는 소망교회에 나간다.
건강은 아주 나쁘지는 않지만 좋은 편도 아니다.
종양은 완치됐지만, 혈압이 높아 매일 혈압약을 먹고, 안과와 치과에도 다닌다.
운동도 밖에서 하는 규칙적인 운동은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남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자격지심도 작용할 것이다.
한때는 사람들이 없는 새벽에 장충동집에서 차 없이 걸어서 다닐 수 있는 남산에 올랐다. 이르면 서너 시에 일어나 두 시간 정도 묵묵히 걸으면서 상념에 젖곤 했다. 남산 산책길에 몇 번 동행한 그의 집 경비팀장 송옥진씨는 돌아오는 길에 해장국집 같은 데 들러 요기를 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이 일과도 남산에서 내려다보면 눈에 들어오는 동아건설 사옥이 마음에 걸려 언젠가부터 그만뒀다.
외출할 때면 집에 있는 다섯명의 직원 중 아무나 운전대를 잡지만 에쿠스 승용차를 직접 몰 때도 있다. 명문대 출신에 재학 중 미스코리아에 뽑힌 이력이 있는 아나운서 출신의 젊은 부인 장은영(31)씨가 몰고 나갈 때도 있다.
그는 “전문경영인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몰락을 자초했다”고 털어놓은 일이 있다. 이들이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 외형 위주의 방만한 경영을 일삼은 것이 부실을 불렀다”고 주장한 적도 있다.
전문경영인 1세대인 이명박 전 현대건설 회장은 “그가 정말 자신에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전문경영인들에게 주었는지는 의문”이라며 “전문경영인 사장이 아니라 ‘사장급’ 직원을 부렸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우리나라엔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관념이 만연돼 있었다. 오너고 전문경영인이고 너나없이 이익을 내기보다는 외형 키우기에 급급했다. 전문경영인의 경영실적에 대한 평가도 ‘몇 년도 몇 대 기업 진입’ 같은 목표와 성과에 크게 좌우됐다.
이런 풍토에서 오너의 대리인으로서의 전문경영인 체제란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었다. 철저한 자금 관리로 한때 ‘관리의 동아’라고 불렸던 회사는 빚더미에 앉고 말았다.
동아의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이행은 더욱이 최 전 회장이 밝히고 있듯이 준비된 이행-소프트랜딩이 아니었다. 94년 동아가 시공한 성수대교의 붕괴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삶의 의욕을 잃은 그는 도피하듯이 서둘러 경영권을 넘겼다.
나이 탓일까, 2년여 전 자신의 몰락을 운명으로 돌렸던 그는 “교회에 다니면서 내 탓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최 전 회장은 동아건설의 분식회계 문제로 요즘 법정에 드나들고 있다. 그는 88년 이래 10년에 걸친 6천억원대 분식회계에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인터뷰도 꺼렸다.
97년 리비아 대수로 대역사(大役事)의 주역으로 브리태니커 연감 미국판에도 올랐던 ‘풍운아’ 최원석에게 이 모든 시련은 그가 누린 영화(榮華)와 더불어 ‘한바탕 봄꿈’이었으면 싶을 것이다.
봄날이 가듯이 봄꿈이라면 깨면 그만이니.
◈ 지미 ─ 빛없는 헤사가 좋은헤사죠~^^;;
◈ 버거 ─ 지금,,요~~주변,,식당마다,,깔린던이~~~헉!!""""""
◈ 지미 ─ 식당마다 보험언니한테 던 맡겨놨다구 생각할꺼예여~,,,버거님 연락처 찍혀인는 껌은 다 돌렸죠?
◈ 이순정 ─ 삶중에 화려함의 영역은 어느 누구도 주인이 아니군요...
◈ 이순정 ─ 초라함도 그렇지만... 봄꿈이라도 실컷 꾸어댈수 있는 자격은 제한이 없는거죠?
◈ 미투리 ─ 초지일관이란 고사성어도 몰랐었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