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에필로그2-4 다시 추락하다

인생 에필로그2-4 다시 추락하다

석두 3 4,479
석두의 군대생활은 아주 잘 나가기 시작합니다. 이제 이 부대에서는 없으면 안될 존재가 되는데 말썽도 참 많이 피웁니다. 나의 제일 나쁜 습관인 자기학대 내지는 자기 파괴본능입니다.  기회만 생기면 일탈을 합니다. 사회생활의 최대 적인데 하물며 군대란 엄격한 조직 안에서 말썽을 부리는거지요. 부산 후송 출장만 보내면 하루 이틀 미귀는 예사입니다. 출장증 뒷면에 부산의 장비장교가 서명한 출장연장허가서를 남용한 탓입니다.
그래서 중대장 왈 상과 벌의 경중이 똑 같다고 상도 안주고 큰벌도 안줍니다만, 자대영창에는 보냅니다. 즉 근무시간에 연병장 지휘대 위에 꿇어앉는 벌입니다. 이 벌을 얼마나 자주 받았느냐하면 봄 여름 가을 겨울 한번씩 일주일간 네번 받았습니다.
그럴때도 나는 내 업무서류를 옆에 두고 곧곧이 꿇어 앉아 업무도 보고 벌도 받는걸 중대장이 보고 혀를 내두드리드랍니다. 다른 병사와 함께 옥고를 치루는데, 옆의 병사는 1시간도 안되어 자세가 허물어지는데 석두는 곳곳하니까요.
여기서 이 부대의 편제를 잠시 언급해야 될 것 같네요.
중대장은 부산 출신입니다. 나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관리관은 이 부대 업무 중추를 지휘합니다. 즉 공병장비 정비 및 후송 업무를 지휘하면서 그 당시 무척 고가인 공병장비 부품을 민간인에게 조달하여 부대내 운영경비에 일조하면서 제 속도 채웁니다. 물론 중대장 몫도 있습니다. 한번씩 각종 어셈버리(부품이 결합되어 기능하는 구조-자동차 핸들과 함께 조립된 셋트 따위)는 관리관 몫과 중대장 몫이 나누어지고, 보급관이 챙기는것 수송관이 챙기는 것 등등에 상사 중사 몫에 심지어 공정계니 뭐니 해서 병장 이하도 지 몫이 있는 알짜 부대입니다.
한번 더 얘기하면 민간인에게 불하된 건설장비 부품은 전라도 지역은 우리 부대가 공급책입니다. 즉 돈되는 부대입니다.
그 부대에 익숙해 졌을 때 소년병 출신 하사를 보았습니다. 나이가 18이든가? 이 하사는 다른 사병과 무조건 친구가 됩니다. 워낙 나이가 어리다보니 아무도 하사 대우 안해줘도 이 친구는 군생활 자체가 즐겁습니다.
석두는 이제 주머니에 돈 좀 있다고 주색잡기도 경험합니다.
참! 주색잡기 시작한 얘기는 해야됩니다. 대구 출신 상병이 후송 보조로 따라왔는데 이 친구는 술은 못 마시는데 여자는 대단히 밝힙니다. 공병창에서 업무 끝나고 숙소로 잡은 여인숙에서 이 친구 내게 안내를 부탁합니다. 기지촌에 반드시 있는 니나노집에 가자는데 난 그런 곳을 모릅니다. 그래도 옛 기억을 더듬어 초량시장 방향으로 가는데 앞 쪽에 왠 아가씨가 엉덩이 살레살레 흔들며 갑디다. 뒷모습이 좋아서 그냥 따라 갔는데, 그 아가씨가 들어 간 골목은 색주가 골목이고 그 아가씨는 우리가 묵고 있는 단골여인숙 일수 받으러 오는 아가씨였습니다.
니나노집, 한복입은 여자가 옆에서 술시중을 들고, 니나노 얼씨구나!젓가락 장단에 밤이 이슥하면 제 파트너 데리고 옆의 여관에 가는게 정코스입니다. 물론 안가도 됩니다만 지불하는 돈에 화대 포함입니다.
난생 처음 그런 곳에 간 그날 난 여관방구석에 쪼그려 앉아 꼬박 밤을 셉니다. 아마 여자도 잠 못 잤을겁니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나는 망가집니다. 아니 남자로서의 동물로서의 본능에 따르는 거겠지요.
주변에서는 그런 내가 좋답니다. 얌전한척 새침 떼는거보다 좋다나요. 주색잡기는 남자의 권리이다. 모르겠네요. 아주 어렸을때 자유부인이라는 모던보이와 모든 걸의 소설을 쓴 정비석 선생님의 신문연재 글 중에 난봉꾼, 팔난봉 얘기가 기억 납니다.
등산 좋아하시는 분들이 말하는 어려운 산 하나 정복하는것과 여자 하나 정복하는 것에 비유해서 험난한 봉우리 넘듯이 난봉꾼이고, 팔난봉은 여자 유형 여덟가지로 논해놓았더랬어요.
얼마전에 나온 영화 조선남녀 열전전 스캔들이던가? 배용준의 여자 섭렵 얘기가 팔난봉입니다.
하나 처녀, 둘 과부, 셋 기생, 넷 유부녀, 다섯 처제, 여섯 장모, 일곱 여승까지는 기억나나 8번은 아리송하네요. 아마 무당이 아닐까?
내가 주색은 되는데 잡기는 전혀 꽝입니다. 그 주색잡는 자리가 앞에 약간 언급했듯이 자염이네 집에서 불과 200미터 거리입니다. 파괴본능이 저지러는 짓일까요. 일부러 그 근처에서 노닥거리는겁니까?
그 곳에서 내 놓는  술은 마셨다하면 골 때리는 엉터리 동동주입니다. 암만 마셔도 취하는지 안 취하는지 모릅니다. 왜냐? 한번도 뻗어본 적이 없어니까요.
812공정대 근무 1년이 다 되어갑니다. 나도 상병 계급장 답니다.
그 어리디 어린 윤하사는 중사 계급장 달고는 졸지에 내 직속상관이 됩니다.
중사 진급주를 한잔 거하게 냅니다. 전라남도 광산군 송정리는 기지촌이 번화가를 잡고 있고 주택가는 직업군인들의 숙소입니다. 그 기지촌에서 가진 윤중사 승진 회식의 끝에서 윤중사도 드디어 성인식을 갖습니다. 아직 스물이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주색잡기에 빠져듭니다. 거기 까지는 윤중사 개인 문제입니다. 그 문제의 불똥이 내게 날라든 것은 다음해 1월달이였습니다.
사무실 행정요원으로 명 받은 윤중사가 사무실에는 거의 붙어 있지않고 정비공장 근처를 어설령거리며 수리차 입고되는 장비 검차를 지가 한다고 설레발칩니다. 사고병인 전상병도 잘 해 나가는 일을 중사인 지가 왜 못하느냐? 더군다나 이 중대에서는 윤중사가 더 오래 근무했지않느냐.
그래서 1월달 후송장비는 검차증명서, 손망실처리 등 모든 걸 윤중사가 제공한걸로 서류를 꾸며서 기차에 올랐는데.
장비 접수 후 검차에서 내 눈이 홱 돌아간다. 겉에 붙는 부속은 있긴  있는데 갯수가 차이나고(그레이다 삽날에 붙은 이빨 같은 것), 속에 있어 보이지 않는 것은 몽땅 없는(발전기의 전동자 아마츄어 아셈버리, 대형은 터빈이라 부러나? 그레이다 변속기 속의 톱니 신주) 빈 껍데기이다.
그러니 검차보고서하고 맞지 않으니 일 처리가 안된다. 광주 부대에 보고하고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데  윤중사 탈영해버렸단다. 그날 거제리 공병정비창을 나와 철뚝릴을 걸어 거제리역으로 가는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해결 방법이 없다. 부대로 돌아가면 해결 될까?
철길의 침목을 하나씩 밟고 가는 데 이상하게 땅이 흔들린다. 돌아보니 동해남부선 열차가 브레이커를 걸고도 관성에 의해 미끄러지면서 나를 덮치기 직전이다. 황급히 철길을 벗어나 철뚝 비탈을 굴렀다 일어서니 승객들이 마구 나를 향해 욕을 한다.
다음 날 내 출장증 기한도 다 되었다. 물론 장비과장 사인으로 더 버텨도 되는데 본대에 전화를 해보니  중대장이 갈리면서 사태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탈영한 윤 중사 체포, 구속되었고  출장증 기일내 부대 못간 석두는 탈영보고 올라갔단다.
이제 이판사판이 되었습니다. 저녁에 남포동 막걸리집에 친구와 갔습니다.  이 친구 자염이 죽은 날 만년필 잡혀서 소주 사준 친구이고 우연하게도 806공정대 후송계라 거제리에서 조우하곤 했는데 제대를 나보다 빨리한거지요. 둘인가 셋인가 넷인가 기억에는 없습니다. 하여튼 주점이 큰 곳인데 손님이 많아 안족으로 들어가는데 통로 옆에 앉아있는 아가씨가 눈에 익습니다만 금방 생각이 안 나네요.
우리끼리 앉아 탁주잔을 드는데 그 아가씨가 내 앞에 딱 섭니다.
그리곤
 "형부, 오랜만입니다"
아! 자염이 동생입니다. 

Comments

★쑤바™★
헉....!!!! 
mamelda
아무리 이판사판이라도 맘이 괴로우셨을텐데요..... ㅡㅡ
여기서 자염의 동생이 짜잔! 
명랑!
헐.... 미기, 탈영을 밥먹듯... (@@);;... 대단한 배폽니다...
천성이 자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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